역사적 인물

프랑스 레지스탕스 네트워크를 이끈 여성 지도자, 마리-마들렌 푸르카드

마리-마들렌 브리두(Marie-Madeleine Bridou, 결혼 후 성은 푸르카드, 1909~1989)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네트워크를 직접 지휘한 몇 안 되는 여성 지도자 중 한 명이며, 벨기에의 앙드레 드 종(Andrée De Jongh)과 더불어 극히 드문 사례로 꼽힙니다.

『라 스피랄』 편집자 시절

마리-마들렌 브리두는 1909년 11월 8일 마르세유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수녀원에서 양육되며 질 높은 교육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에두아르 메리크(Édouard Méric) 대령과 결혼했지만 독립적인 기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기자로 일하며 특히 유명 작가 코레트(Colette)와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36년, 마리-마들렌은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과 군인이자 극우 정치인인 조르주 루스토노라코(Georges Loustaunau-Lacau)를 만났습니다. 루스토노라코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언론 그룹 『라 스피랄 앤 로르드르 나시오날(La Spirale et l'ordre national)』의 부편집장 자리를 그녀에게 제안했고, 이것이 그녀가 언론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라이언스 네트워크의 수장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조르주 루스토노라코는 반공산주의·반독일·반유대주의 운동을 이끌어 왔습니다. 프랑스가 패전하자 마리-마들렌은 그와 함께 얼라이언스(Alliance) 네트워크를 결성했고, 1941년 조르주가 체포되자 젊은 어머니였던 그녀가 네트워크의 지휘봉을 넘겨받았습니다. 수장의 체포라는 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조직의 결속력을 성공적으로 유지해냈습니다.

약 1,500명으로 구성된 이 네트워크(여성이 4분의 1을 차지)는 영국 비밀정보부대를 위해 활동했으며, 마리-마들렌은 독일 점령지역에서 조직을 지휘했습니다. 주요 임무는 독일군 병력 수송 현황과 서부 해안 방어 시설 등 전략 정보의 수집과 송신이었습니다. 네트워크 내에서 '고슴도치(Hérisson)'라는 코드네임을 사용한 그녀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썼고, 1941년 11월에는 간신히 체포의 그물을 빠져나가기도 했습니다.

내부 배신으로 인해 전쟁 기간 동안 무려 483명의 얼라이언스 요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마리-마들렌 역시 여러 차례 위기에 처했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구원받았습니다. 1942년 11월 7일 마르세유에서 체포되었을 때는 경찰 서장의 개입 덕분에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3년 9월 장 물랭(Jean Moulin)과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 한 명이 연이어 체포되면서, 영국 측은 그녀의 안전을 위해 런던에 머물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녀는 이름과 용모까지 바꿔야 했고, 자신이 키운 네트워크가 해체되어 가는 것을 먼 곳에서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4년 6월, 마리-마들렌은 마침내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달 18일 독일군에게 붙잡혔지만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적십자 간호사 복장으로 위장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텨냈습니다.

전후의 싸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마리-마들렌과 얼라이언스 네트워크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얼라이언스가 정식 군부대로 인정받도록 노력해 생존 요원들과 유족들의 권익을 확보하는 한편, 조직을 배신한 자들을 색출하는 데도 힘썼습니다. 또한 전쟁 중 순직한 483명을 기리는 '얼라이언스 추모비(Mémorial de l'Alliance)' 관리를 맡았고, 생계 곤란에 처한 순직 요원들의 미망인을 돕기 위해 '얼라이언스 우호 협회(Association Amicale Alliance)'를 설립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두아르 메리크와 이혼한 뒤 위베르 푸르카드(Hubert Fourcade)와 재혼하여 플로랑스, 자크, 페넬로프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1968년에는 요원들이 동물 이름을 코드네임으로 사용한 데서 독일군이 붙였다는 별명을 딴 『노아의 방주(L'Arche de Noé)』를 출간했고, 이 회고록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62년에는 레지스탕스 행동위원회 회장을 맡았으며, 1981년에는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 관련 명예심판단의 단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녀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사령관급(Commandeur)에 서임되었고, 레지스탕스 훈장 수여자 전국협회와 국제 레지스탕스·강제수용·추방 연합의 부회장, 국제반인종주의·반유대주의연맹(LICRA) 회원, 유럽공동체 총회 대표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며 사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마리-마들렌 푸르카드는 1989년 7월 2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장례는 파리 앵발리드(Invalides)에서 군례로 거행되며 영예를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