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지기스문트 1세(1467~1548):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이끈 르네상스 군주

지기스문트 1세(1467~1548):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이끈 르네상스 군주

'늙은 왕' 지그문트의 초상화, 마르친 오스트로프스키(Marcin Ostrowski) 작으로 추정됨.

야기엘로 왕조의 다섯째 아들

지기스문트 1세(폴란드어: 지그문트 I 스타리)는 야기엘로 왕조 출신으로, 폴란드 국왕 겸 리투아니아 대공을 지낸 군주이다. 그는 카지미에시 야기엘로니치크와 엘주비에타 라쿠샨카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이었다. 이미 성년이 된 형들이 여럿 있었던 탓에 부모는 그에게 큰 정치적 전망을 기대하지 않았고, 왕이 될 준비도 시켜두지 않았다. 지기스문트가 처음 맡은 직책은 1504년부터의 실레지아와 루사티아 총독 자리였는데, 이는 헝가리와 보헤미아를 다스리던 형 브와디스와프가 내려준 것이었다.

우연히 열린 왕위

1506년, 왕위 계승 경쟁자였던 형들인 카지미에시, 얀 올브라흐트, 알렉산데르 야기엘로니치크가 차례로 요절하면서 지기스문트는 폴란드 국왕으로 즉위하고 리투아니아 대공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즉위와 함께 그는 모라비아 도시 출신 시민 여성 카타지나 텔니차카와의 오랜 관계를 정리했다. 두 사람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사이였지만, 카타지나는 그에게 두 명의 자식을 낳아 주었었다. 이후 지기스문트는 헝가리 귀족 바르바라 자포여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르네상스의 후원자

지기스문트는 결단력이 다소 부족하고 사치스러운 면모를 보인 군주였지만, 예술과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다. 그가 대대적으로 개축한 바벨 성(지그문트 예배당 포함)의 아름다움은 오늘날까지 상당 부분 감상할 수 있다. 1525년에는 튜튼 기사단의 마지막 대수장 알브레히트 호엔촐레른 공작으로부터 신하의 예를 갖춰 영지를 받았는데, 이 역사적 장면은 얀 마테이코의 명화 '프로이센 호의(Prussian Homage)'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1526년에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던 마조프셰 공국을 폴란드 영토로 편입했는데, 이 결정 덕분에 수십 년 뒤 나라의 수도를 바르샤바로 옮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보나 스포르차와 후계 문제

이탈리아 남부 출신인 두 번째 아내 보나 스포르차는 특히 왕의 말년 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530년, 왕비의 강요로 아들 지그문트 아우구스트가 아버지 생전에 왕으로 대관받았다('vivente rege', 즉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이러한 배경 때문에 아버지는 '늙은 왕(Sigismund I the Old)'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기스문트 1세는 1548년 4월 1일 크라쿠프에서 눈을 감았으며, 권력은 아들 지그문트 아우구스트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