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노예선에 실려 온 소녀, 미국 최초의 흑인 시인 필리스 휘틀리

필리스 휘틀리(Phillis Wheatley, 1753~1784)는 출판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인입니다. 그녀의 시집 『다양한 주제에 관한 종교적·도덕적 시편(Poems on Various Subjects, Religious and Moral)』은 대서양 건너 영국까지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노예선에 실려 온 일곱 살 소녀가 어떻게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펴봅니다.

교육받은 노예

필리스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녀는 서아프리카, 아마도 오늘날의 세네갈 혹은 감비아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불과 일곱 살에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고, 1761년에는 '필리스(Phillis)'라는 이름의 노예선을 타고 당시 영국령이던 매사추세츠 보스턴으로 향했습니다. 항구에 도착한 소녀는 재단사이자 상인인 존 휘틀리(John Wheatley)에게 사입혔는데, 존은 아내 수잔나(Susanna)에게 시중들 하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부부는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온 배의 이름을 따서 '필리스'라 불렀고, 소녀는 주인의 성인 '휘틀리'를 물려받았습니다.

휘틀리 부부의 두 자녀, 맏딸 메리와 남동생 너대니얼은 필리스에게 영어와 읽기, 쓰기를 가르쳤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비교적 진보적이었던 존과 수잔나는 소녀의 교육을 지지했고, 이는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물론 노예에게는 더욱 드문 일이었습니다. 필리스는 자신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히며 성경, 역사, 시, 문법을 공부했습니다. 열세 살이 되던 해, 그녀는 폭풍우 속에서 거의 익사할 뻔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시를 썼고, 이 시는 신문 <뉴포트 머큐리(Newport Mercury)>에 실렸습니다. 필리스의 재능은 부정할 수 없었고, 휘틀리 가족은 그녀가 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점차 덜어 주며 그녀를 아껴 키웠습니다.

18명의 학자가 증명한 작품의 주인

칼뱅주의 설교자 조지 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가 사망하자, 필리스는 그를 추모하는 시 「조지 화이트필드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며」를 지었고, 이 시는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지에 게재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교육받은 노예라는 그녀의 특이한 처지는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필리스는 1772년, 자신의 작품이 정말 자신이 쓴 것임을 입증해야 하는 심사를 받게 됩니다. 그녀는 승리했고, 작품을 검토한 18명의 학자들이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며 서명한 증명서를 손에 넣었습니다. 필리스는 동시대 인물부터 그리스 신화까지 다양한 소재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썼습니다. 반면 노예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한 편의 시에서는 노예제를 잔혹한 운명이라 말했지만, 또 다른 시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아메리카로 끌려온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노예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에는 특히 수잔나를 향한 깊은 애정이 드러납니다.

"수잔나는 슬퍼하네, 나는 견딜 수 없구나,
맑은 눈물이 쏟아지는 광경을,
슬픈 이별의 시각에 떨어지는
그 애틋한 눈물방울을 바라보는 것이."

영국 여행과 첫 시집 출간

1773년, 스무 살이 된 필리스는 너대니얼과 함께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건강이 연약했던 그녀는 치료를 받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수잔나가 영국에서 작품 출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런던에서 필리스는 상류층 인사들을 알현할 기회를 얻었고, 그중 많은 이들이 그녀를 후원했습니다. 다양한 주제를 담은 28편의 시를 모은 시집 『다양한 주제에 관한 종교적·도덕적 시편』이 출간되면서, 필리스는 책을 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조지 3세 국왕을 알현하기 전에 귀국했지만, 그녀는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는 인사들을 포함한 상류층 인사들과 계속 서신을 주고받았습니다. 1775년에는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시를 그에게 보냈고, 다음 해 워싱턴은 직접 감사를 전하고자 그녀를 초대했습니다.

해방, 그리고 비참한 말년

1778년 존 휘틀리가 사망하면서 유언장에 따라 필리스는 해방되었습니다. 석 달 후 그녀는 해방된 상인 존 피터스(John Peters)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난했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 두 아기를 잃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필리스는 계속 글을 썼지만, 빈곤한 형편 때문에 작품을 출간할 수 없었습니다. 1784년 존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히자, 필리스는 병든 어린 아이를 돌보며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하녀로 고용되었지만, 열악한 생활 환경과 연약한 건강이 그녀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필리스 휘틀리는 1784년 12월 5일,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뒤따랐습니다.

「어떤 신사와 숙녀에게 — 숙녀의 오빠와 자매, 그리고 한 살 아이 에이비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죽음의 왕국에 내 눈을 고정하노니,
인간의 본성이 거대한 폐허로 누워 있는 곳.
깊은 생각에 잠긴 마음으로 나는 음침한 처소를 더듬으니,
위대한 정복자가 그의 전리품을 쌓아 둔 곳.
거기 육천 년의 자손들이
끝없는 무리를 이루어 내 눈앞에 나타나네.
온 왕국이 그의 어두운 굴에 밀려 들어가고,
열방은 태초의 먼지와 뒤섞이네.
그는 여전히 탐욕스럽게 널찍한 무덤을 채우고,
현재도 그의 것, 다가올 시대도 그의 것.
보라, 여기 오빠가, 저기 자매가 누워 있고,
귀여운 딸 하나가 죽은 이들과 섞이네.

그러나 숙녀시여, 슬픔을 거두소서,
눈물의 샘이 마르게 하소서.
먼지 쌓인 평야를 적시려 흘러도 헛수고요,
당신의 한숨이 하늘로 날아가도 역시 헛됩니다.
당신의 고통을 목격할 뿐, 더는 못하리니,
죽음이 이 필멸의 땅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는 한.

빛나는 별들과 빛의 은빛 여왕조차
마침내 어두운 밤 속에서 사라져야 하리니:
당신의 벗들을 생명을 내려준 전능하신 분의 손에 맡기고,
그분의 명령에 머리 숙이소서.
당신의 에이비스를 원망 없는 마음으로 내어주소서,
비록 당신 영혼의 절반이 떠나도록 정해졌다 해도.
갓난아기를 빛나는 호위병들에게 맡기소서,
공중의 바다를 승리의 기세로 건너게 하소서:
그녀의 영혼은 커져 하늘의 기쁨으로 솟아오르고,
진리와 창조되지 않은 것들을 양식으로 삼네.
어찌 보면 저 위의 나라에서 그녀가 들리는 듯하고,
효심 어린 사랑으로 몸을 기울여,
당신을 그곳으로 초청해 불멸의 행복을 나누자 하네,
이런 세상에서는 알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행복을.
높이 솟은 희망과 자라나는 은총으로 일어나,
하늘 너머의 축복을 찾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