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망틴 오로르 루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 1804~1876)은 필명 조지 상드(George Sand)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문인입니다. 그녀는 당대 지성사의 한복판에서 활동하며 프랑스 문학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
오로르는 귀족 가문 출신인 모리스 프랑수아 뒤팅 드 프랑쾨유(Maurice François Dupin de Francueil)와 소피 빅투아르 들라보르드(Sophie Victoire Delaborde)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804년 7월 1일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5세 때 아버지를 잃고 앵드르(Indre) 지방으로 옮겨 친할머니 뒤팅 부인 밑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가정교사를 고용해 손녀의 교육을 맡겼는데, 자연을 벗삼아 보낸 시골에서의 유년 시절은 훗날 그녀의 문학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오로르는 파리에 있는 영국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에서 학업을 마쳤습니다.
1822년 9월, 18세의 오로르는 가문에 물려받은 재산을 노리는 구혼자들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바롱 프랑수아 카지미르 뒤드방(Baron François Casimir Dudevant)과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모리스와 솔랑주라는 두 자녀가 태어났지만 부부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831년, 오로르는 남편 곁을 떠나 연인이었던 쥘 상도(Jules Sandeau)를 따라 파리로 향했습니다.
스캔들에 휩싸인 작가
파리에 정착한 오로르와 쥘은 'J. 상(J. Sand)'이라는 공동 필명으로 피가로(Le Figaro)지에서 기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단독 소설 인디아나(Indiana)(1832)를 발표하면서 'G. 상', 곧 '조지 상드'라는 필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1833년에 발표한 렐리아(Lélia)가 즉각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그녀는 당대 문단의 중심으로 진입했고, 이후 생이 다할 때까지 매년 한 편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내놓는 다작 작가로 활약했습니다.
조지 상드는 당대에 수차례 스캔들을 일으킨 화제의 인물이었습니다. 실용성과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당시 여성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극장, 도서관, 법정 등에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 그녀는 종종 남장을 하곤 했습니다. 남성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발자크나 위고 같은 남성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여러 차례 열정적인 연애를 경험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그녀의 삶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메리메, 뮈세, 쇼팽, 그리고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 마리 도르발 등 당대 최고의 인사들과 깊이 교류했습니다. 특히 변호사 미셸 드 부르주(Michel de Bourges)와의 만남은 그녀를 공화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으로 이끌었고, 이후 조지 상드는 민주주의 진영과 연대하며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말년에는 아들의 친구 한 사람과 동거하며 그를 연인이자 비서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노년까지도 지식인들의 만찬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으며, 그중에서도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와 교류했습니다. 조지 상드는 1876년 6월 8일, 72세를 일기로 장폐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 번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