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다가스카르의 정치인 지젤 라베사할라(Gisèle Rabesahala, 1929~2011)는 조국의 독립에 평생을 바쳤고, 인권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마다가스카르의 문화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마다가스카르 역사상 최초로 장관직에 오른 여성이기도 합니다.
"변호사는 무고한 사람을 변호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
지젤 라베사할라는 1929년 5월 7일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 아바라드라노 지역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 섬은 1896년 마지막 여왕 라나발로나 3세가 체포된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프랑스군 부사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프랑스, 튀니지, 그리고 오늘날의 말리에 해당하는 지역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4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은 다시 마다가스카르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수녀의 길을 생각했던 지젤은 곧 변호사를 꿈꾸게 됩니다. 그녀는 자서전 『자유가 오게 하라(Let Liberty Come)』에서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나는 변호사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변호사는 무고한 사람을 변호하는 데 헌신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지젤은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현재의 J.J 라베아리벨로 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속기 타이피스트 직업훈련을 이수했습니다. 애국심이 깊었던 그녀는 식민 지배가 가져온 강제 노역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 군인 강제 동원 등으로 인한 고통을 눈여겨보았고, 17세에 조국의 해방을 위해 활동하던 마다가스카르 갱신 민주운동(MDRM)의 비서로 합류했습니다.
같은 해인 1946년, 여러 마다가스카르 지식인들이 프랑스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이들은 프랑스 국회에서 마다가스카르 국민의 독립 열망을 대변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봉기와 탄압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의 징발과 각종 학대는 섬 전체에 반란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1947년 3월 29일 밤, 수천 명의 봉기군이 무기를 들고 프랑스인 정착민들의 주택과 행정 당국에서 일하던 마다가스카르인들의 집을 습격했습니다. 이에 대한 프랑스군의 보복은 극도로 잔혹했습니다. 수천 명이 체포되어 학살당했고, 탄압은 1948년까지 민간인과 봉기 가담자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 식민 당국은 1950년 공식적으로 사망자를 11,342명으로 발표했지만, 마다가스카르 내외의 연구자들은 10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합니다. 봉기 초기에 이를 거부하고 폭력을 규탄했던 MDRM조차 해체되었고, 지도부는 체포되었습니다.
탄압 희생자를 위한 연대 활동
1950년, 지젤 라베사할라는 탄압의 희생자와 정치범, 그리고 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 연대위원회(Fifanampiana Malagasy)를 설립했습니다. 언론에 기고하며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무죄 석방을 위해 활동한 그녀는 곧바로 식민 당국의 주목과 감시 대상이 되었지만,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지젤은 젊은 나이에도 중요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1953년에는 최초의 여성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55년에는 공산주의 성향의 격론지 『임옹고 바오바오(Imongo Vaovao)』를 공동 창간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문화를 지키다
1958년, 지젤 라베사할라는 새롭게 창당된 마다가스카르 독립 회의당(AKFM)의 사무총장이 되며 정당 지도자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2년 후인 1960년, 마다가스카르는 드디어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제1공화국은 협력 협정을 통해 프랑스와 긴밀하게 묶여 있었고, 치라나나 대통령은 프랑스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프랑스군은 여전히 섬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야당 정치인으로서 지젤은 명실상부한 완전한 독립과 사회 불평등의 종식을 위해 계속 투쟁했습니다. 마침내 1976년 프랑스군이 섬에서 철수하고 대사관과 영사관이 폐쇄되었습니다. 1977년 지젤은 문화·혁명 예술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4년간 마다가스카르의 고유한 정체성, 언어,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확산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녀의 주요 업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국립도서관 설립
- 역사 유적지 복원 사업
- 마다가스카르 예술가 및 무형문화유산 지원
그녀는 또한 1977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001년에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삶을 이어갔습니다.
세계에 남긴 유산
지젤 라베사할라는 20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의회를 찾은 당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그녀를 기리며 다음과 같은 추도사를 남겼습니다.
"고 지젤 라베사할라는 마다가스카르의 위대한 딸이자 세계 모든 이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녀는 겨우 17세에 정치에 입문해 식민주의에 맞서 싸웠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저는 여러분께 이 말을 새기고, 역사에서 배워 모든 국민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해 주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