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를레앙의 서자 장(Jean d'Orléans)은 발루아 왕조의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비록 적출은 아니었지만, 그는 훗날 샤를 7세가 될 도팽과 함께 약 10년 동안 자라며 왕실에 가까운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도팽의 시종장이자 섭정기의 측근으로서, 그는 오를레앙 공작 샤를이 아쟁쿠르 전투 이후 잉글랜드의 포로로 갇혀 있던 기간 동안 프랑스 영내에 남은 가문의 유일한 남성 대표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공작의 대리총독(lieutenant-général)으로 임명되어 가문의 권익과 영지를 지키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잔 다르크와 함께한 오를레앙 방어전
1428년 잉글랜드군이 오를레앙을 포위하자, 뒤누아는 도시의 방어를 총지휘했다. 이듬해 잔 다르크가 구원군과 함께 도착하자 그는 그녀를 영접하고 협력했으며, 이후 '처녀'라 불린 잔 다르크와 함께 로아르 강 유역의 일련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다. 그는 파리 진격 작전까지 잔 다르크를 수행하며 백년전쟁의 전환점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국의 재건자'라는 칭호
뒤누아는 생애 내내 샤를 7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며, 왕이 승천한 후에는 루이 11세에게도 변함없는 충성을 유지했다. 군 지휘관으로서의 빼어난 활약 덕분에 그는 수많은 영예를 안았고, 국왕으로부터 "조국의 재건자"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1439년에는 뒤누아 백작령을 하사받았는데, 이 지명이야말로 그의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긴 것이 되었다. 1450년에는 리슈몽과 클레르몽과 함께 노르망디의 포르미니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잉글랜드 세력을 몰아냈다. 이후 그는 전선을 기옌 방면으로 돌렸고, 1453년 카스티용 전투를 끝으로 백년전쟁의 마지막 장이 닫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