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울랄(Ullal)의 여왕 라니 아바카 초우타는 16세기 포르투갈 식민 세력과 맞서 싸운 인물입니다. 40년 가까이 그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그녀는 오늘날 '인도 최초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불립니다.
울랄의 여왕
포르투갈의 정복이 진행되던 16세기 초 인도에서 태어난 아바카 초우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지역을 다스리던 초우타 왕조의 일원인 그녀는 왕조가 따르던 모계 상속 제도에 따라 삼촌 티루말라 라야(Tirumala Raya)에 의해 항구 도시 울랄의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티루말라 라야는 아바카에게 군사 전략과 전술을 가르쳤고, 망갈로르의 방가(Banga) 공국 왕 락마파 아라사(Lakhmappa Arasa)와의 혼맥도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고, 아바카는 곧 울랄로 돌아왔습니다. 락마파는 여왕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됩니다.
울랄의 저항
울랄은 번영한 항구이자 향신료 무역로의 교차점으로,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던 유럽 열강들—특히 포르투갈, 네덜란드, 잉글랜드—이 탐내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러나 현지 통치자들의 저항이 워낙 강렬하여 어느 나라도 이곳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1525년 포르투갈이 울랄 정복을 처음 시도했을 때, 라니 아바카(라니는 군주를 뜻함)는 동맹을 맺고 카스트와 종교의 벽을 넘는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자인교 신자였던 그녀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을 가리지 않고 등용했으며, 망갈로르 왕과의 혼인 관계를 활용해 동맹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러한 연합 덕분에 아바카는 포르투갈군의 울랄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습니다.
패배와 승리
아바카의 저항에 분노한 포르투갈은 조공을 요구했지만, 여왕은 굴복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포르투갈은 제독 돔 알바루 다 실베이라(Dom Álvaro da Silveira)를 파견했으나, 라니 아바카 초우타는 또다시 공격을 격퇴시켰습니다.
1557년 포르투갈은 망갈로르를 공격해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1568년에는 울랄을 재차 공격했지만 아바카는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이에 포르투갈 총독 안토니오 노론하(António Noronha)는 장군 주앙 페소타(João Peixoto)와 함대를 울랄로 보냈습니다. 적군은 도시를 함락하고 궁전까지 점령했지만, 아바카는 탈출해 모스크에 몸을 숨겼습니다. 같은 날 밤, 여왕은 200명의 병사를 규합해 포르투갈군을 기습 공격했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주앙 페소타는 전사했고, 수많은 포르투갈 병사들이 후퇴하거나 포로로 잡혔습니다. 아바카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망갈로르 요새를 되찾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동맹과 배신
다음 해 포르투갈은 망갈로르 요새와 인근 도시를 탈환했지만, 울랄 앞에서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라니 아바카 초우타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은 여왕의 떠남을 용서하지 못했던 전 남편 락마파 아라사와 손을 잡습니다. 그의 도움 아래 포르투갈은 울랄에 새로운 공세를 펼쳤습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아바카는 도시를 끝까지 사수했습니다.
침략자에 맞서기 위해 여왕은 현지 통치자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많은 동맹군이 격렬한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핵심 동맹국들의 잇따른 상실과 군사 전략을 포르투갈에게 누설한 전 남편의 배신 끝에, 아바카의 불굴의 저항은 마침내 꺾이고 말았습니다. 40년 넘게 포르투갈의 공격을 막아낸 그녀는 결국 패배하여 투옥되었습니다.
두려움 없는 여왕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전사였던 라니 아바카 초우타는 감옥 안에서조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저항 과정에서 싸우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아바야 라니(Abhaya Rani)', 즉 두려움 없는 여왕으로도 알려진 라니 아바카는 유럽 식민 세력에 맞선 최초의 인도인 중 한 명이며, 오늘날 '인도 최초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