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모잠비크의 화가이자 조각가 베르티나 로페스(Bertina Lopes): 식민주의에 맞선 예술가의 인생

모잠비크 출신 예술가 베르티나 로페스(Bertina Lopes, 1924~2012)는 아프리카와 포르투갈의 영향이 공존하는 조각과 회화를 남겼습니다. 기하학적 형태와 풍부한 색채로 가득한 그녀의 작품에는 사회 비판 의식과 민족주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포르투갈 유학 시절

베르티나 로페스는 1924년 7월 11일, 당시 '로렌수 마르케스(Lourenço Marques)'라 불리던 오늘날의 모잠비크 수도 마푸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모잠비크는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포르투갈 식민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명문으로 손꼽히는 모잠비크 가문 출신이었고, 포르투갈인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베르티나와 세 자매는 엄격한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가정 환경은 그녀 안에 잠재된 예술적 소질을 자연스럽게 키워주었습니다. 중등교육 2년 과정을 마친 뒤 베르티나는 리스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갔고, 프레스코·스테인드글라스·도자기 작업으로 명성이 높았던 화가 리누 안토니우(Lino António)에게서 회화와 드로잉을 배웠습니다.

안토니우 아호이우 장식미술학교(Escola de Artes Decorativas António Arroio)에서는 석판화와 장식 회화 과정을 수강하며 카를루스 보텔류(Carlos Botelho)를 비롯한 포르투갈의 화가, 시인, 지식인들과 폭넓게 교류했습니다. 1949년에는 졸업과 동시에 미술 교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유학 시절 베르티나는 서구 회화, 남미 거리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포르투갈 전위 예술에 깊이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살라자르(Salazar) 독재 정권 아래에서 예술 창작은 질식할 지경이었고,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반파시스트 서클에 동참하며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키워갔습니다. 공공연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녀는 정치경찰의 면밀한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모잠비크 귀환

1953년 베르티나는 모잠비크로 돌아와 9년간 젊은 여성들에게 드로잉을 가르쳤습니다. 자연·도시·사회 환경을 관찰하는 데 기반을 두고 예술적 자유를 담아낸 그녀의 혁신적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보수적인 학교 규정과는 충돌을 빚었습니다.

그녀는 모잠비크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인 비르힐리우 드 레무(Virgílio de Lemo)를 만나 결혼했고, 1955년 쌍둥이 비르힐리우와 에우제니오를 낳았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열렬한 반대자였던 남편은 필명으로 반식민주의 시를 발표했다가 포르투갈 국기 모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후 모잠비크 국민 저항 운동에 가담하여 밀정 단체와의 연루 및 선동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영향과 당시 만난 에두아르두 몽들라느(Eduardo Mondlane),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같은 정치적 반대파들의 존재는 베르티나의 반식민주의 신념을 한층 굳건히 다져주었습니다. 억압, 인종차별, 사회적 차별에 대한 그녀의 저항 정신은 곧바로 작품에 녹아들었고, 소외된 사람들과 밑바닥의 삶은 그녀 미술의 주요 소재가 되었습니다. 결국 강경한 정치적 입장은 그녀에게 조국을 떠날 것을 강요했고, 1961년 베르티나는 리스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이 뒤따라 왔고, 남편은 간신히 탈출해 파리로 향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삶

리스본에서 새로운 전위 예술가들을 만나며 예술 세계를 확장해 나간 베르티나는, 모잠비크의 설화·역사·정치적 사건에 깊이 뿌리내린 작품들을 통해 조국의 독립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이 시기 그녀의 팔레트는 더욱 화려해졌고, 선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또한 전문가들에게 도자기 기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 베르티나는 포르투갈 정치경찰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마로 이주했고,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로마에서 예술 역량을 더욱 다듬으며 새 삶을 일궈낸 그녀는 1965년 예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프란체스코 콘팔로니(Francesco Confaloni)와 재혼하고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예술가, 지식인, 미술 평론가들과 만나 자신의 스타일과 표현 언어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조국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녀의 강렬한 예술은 모잠비크를 향한 애착을 놓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연작 『라 미아 라디체 안티카(La mia radice antica, 나의 오래된 뿌리)』를 선보이며 과거에 대한 깊은 향수를 드러냈습니다.

긴 예술 경력

1975년 베르티나는 잠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보스턴, 워싱턴, 필라델피아의 현대미술관들을 탐방했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전위 예술에 대한 이해를 완성했고, 20세기의 천재로 꼽았던 브라크(Braque), 마티스(Matisse), 피카소(Picasso)의 세계를 깊이 흡수했습니다.

모잠비크 독립 이후 이어진 참혹한 내전은 베르티나와 그녀의 예술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재료와 매체를 탐구하여 나무, 밧줄, 종이로 만든 '토템'을 창조했는데, 이는 분열된 조국의 상징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폭력의 은유인 토템 형태의 브론즈 조각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1981년에는 사모라 마셸 대통령의 초청으로 모잠비크 독립 6주년 기념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유럽에서의 전시와 함께 마푸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회화를 선보였으며, 앙골라 루안다와 로마에서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993년 베르티나는 모잠비크 주 이탈리아 문화 고문으로 위촉되었습니다. 긴 경력 동안 그녀는 저명한 장소에서 수많은 전시를 개최했고, 예술적 성취와 인도적 헌신 모두를 인정받아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습니다. 베르티나 로페스는 2012년 2월, 8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의 예외적인 삶과 작품은 오늘날까지 아프리카 현대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