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무시네 코칼라리: 알바니아 최초의 여성 작가이자 정치가

알바니아 최초의 여성 작가 무시네 코칼라리(1917~1983)는 정치에 뛰어들어 알바니아 사회민주당을 공동 창당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공산 정권의 박해를 받으며 글을 쓸 권리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문학에 대한 일찍 싹튼 열정

무시네 코칼라리: 알바니아 최초의 여성 작가이자 정치가

무시네 코칼라리는 1917년 2월 10일,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터키 아다나에서 지로카스트르(오늘날 알바니아) 출신의 교양 있고 정치적으로 헌신적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무시네가 세 살이던 1920년, 그녀의 가족은 8년 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알바니아로 돌아왔습니다.

형제자매 중 막내였던 무시네는 세심하고 따뜻한 교육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알바니아 문화와 문학에 깊은 열정을 보였으며, 이러한 관심은 1930년대 티라나에서 형 베심(Vesim)이 운영한 서점을 통해 더욱 키워졌습니다. 이미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무시네는 학생 시절 첫 기사들을 발표했습니다. 1938년에는 로마로 유학을 떠나 문학을 공부했고, 이 시기를 기록한 일기 『나의 대학 생활』과 알바니아 독립의 영웅 나임 프라셰리(Naim Frashëri)를 주제로 한 논문을 남겼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듯』

1939년, 무시네 코칼라리는 책 『할머니가 말씀하시듯(Siç me thotë nënua plakë)』을 집필하고 출판했습니다. 주로 알바니아 남부에서 사용되는 방언인 토스크어로 쓰인 이 책에는 산문 형식의 열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알바니아 민담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강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지로카스트르 여성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알바니아에서 여성이 직접 쓰고 출판한 최초의 저작으로 평가받으며, 페미니즘의 선구적 텍스트로도 꼽힙니다. 무시네 자신은 이 책을 "과거 세계의 반영이자, 어린 시절의 길과 그 멜로디가 결혼 초년과 노예의 사슬, 가부장적 광신주의에 묶인 성인 여성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무시네는 이탈리아어-알바니아어 사전도 편찬했습니다. 1944년에는 스케치를 곁들인 알바니아 민담집 두 권, 즉 『흔들리던 삶(Sa u-tunt jeta)』과 『화롯가에서(Rreth vatrës)』를 연달아 출판했습니다.

정치적 헌신

로마 유학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무시네 코칼라리는 반파시스트·반공산주의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알바니아로 귀국한 후에도 그녀는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1943년 알바니아 사회민주당의 공동 창당 멤버로서 처음에는 당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당 기관지 『자유의 목소리(Zëri i Lirisë)』와 잡지 『알바니아 여성(Gruaja Shqiptare)』의 발행에도 참여했습니다.

점차 형의 서점은 무시네와 같은 정치적 이념을 공유하는 지식인, 문학 애호가,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 활동은 1944년 집권하여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을 숙청하려 했던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알바니아 공산당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1944년 11월, 무시네의 두 형제 뭄타즈(Mumtaz)와 베심(Vejsim)은 재판 없이 처형되었습니다. 비극에 시달린 그녀는 형제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했습니다.

1946년 1월, 티라나에 주둔한 연합군에게 자유 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직후 무시네는 공산 정권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인민의 적"

무시네 코칼라리: 알바니아 최초의 여성 작가이자 정치가

수감 기간 동안 고문을 겪었지만, 무시네 코칼라리는 끝내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에서 짧게 할당된 발언 시간 동안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조국을 사랑하기 위해 공산주의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어도 내 조국을 사랑합니다. 나는 조국의 발전을 바랍니다. 당신들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랑하지만, 이제 승리했으니 당신들이 정치적 반대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몰살시키려 합니다. 나는 당신들처럼 생각하지 않지만, 내 조국을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나의 이상 때문에 나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1946년 7월, 무시네는 "방해공작자이자 인민의 적"이라는 죄목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녀는 알바니아 중부 마트(Mat) 지역의 감옥에서 18년을 보냈습니다. 수감 생활이 끝난 후에도 북부 알바니아의 르레셴(Rrëshen) 마을에서 19년간 더 강제 수용되었습니다. 계속해서 글쓰기가 금지된 그녀는 거리 청소부로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몰래 『사회민주당은 어떻게 탄생했는가(Si lindi Partia Social Democrat)』라는 책을 집필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책에서 자신의 정치적 헌신을 되돌아보며 변함없는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1980년, 무시네 코칼라리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와 처우는 거부당했고, 그녀는 큰 고통 끝에 1983년 8월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