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넝마주이들의 수녀 엠마누엘, 이집트 빈민가에 평생을 바치다

마들렌 시캉(Madeleine Cinquin), 훗날 엠마누엘 수녀(Sœur Emmanuelle, 1908~2008)는 인도주의 활동으로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은 프랑스 출신 수녀이자 교사, 작가였습니다.

어린 시절과 소명의 시작

1908년 11월 16일 브뤼셀에서 태어난 마들렌 시캉은 속옷 사업으로 재산을 쌓은 부유한 프랑스-벨기에 부부의 세 자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브뤼셀, 런던, 파리를 오가며 보냈습니다. 그러나 1914년 9월 6일, 벨기에 오스텐드 해안에서 아버지가 눈앞에서 익사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마들렌은 이 사건으로 깊은 상처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종교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신의 신앙 소명이 바로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몇 년 후 런던에서 시온 성모회(Notre-Dame de Sion) 원장을 만나면서 수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1929년 5월 6일 지원자로 시온 성모회에 입회하여 철학과 종교학을 공부했고, 1931년 5월 10일 서원하며 '엠마누엘 수녀'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부유층 소녀들을 가르치던 교사 시절

넝마주이들의 수녀 엠마누엘, 이집트 빈민가에 평생을 바치다엠마누엘 수녀는 처음에 터키 이스탄불의 가난한 동네 소녀들을 위한 학교에 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술레이만 대제에 관한 강연에서 학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뒤에는 시온 성모 고등학교(Lycée Notre-Dame de Sion)로 옮겨 부유한 집안의 소녀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1954년에는 튀니지 튀니스로 발령받아 프랑스 소녀들을 가르쳤지만, 이 새 임무는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튀니지 탈식민지화라는 격변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피상적이라고 느꼈고, 몇 년 후 상급자들은 그녀를 다른 곳으로 전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파리에서 문학 학위를 취득한 뒤 1959년 다시 이스탄불로, 1964년에는 이집트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학생들 역시 가난에 무관심해 보였고, 엠마누엘 수녀는 대신 불우한 동네인 바코스(Bacos)의 소녀들을 돌보는 일을 스스로 택했습니다.

카이로 빈민가, 에즈베트엘나클

1971년, 63세의 나이에 카이로의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싶어 했지만 행정상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겠다는 소망을 품은 그녀는 수도회의 허락을 받아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인 에즈베트엘나클(Ezbet-El-Nakhl)에 정착했습니다. 콥트 기독교인이 대다수를 이루는 이 공동체에서 그녀는 지역 교회들과 협력하며 보건과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976년에는 콥트 정교회 수녀단인 베니수에프 마리아의 딸들(Daughters of Mary of Béni-Souef)의 원장 사라 수녀가 합류하여 오두막을 함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977년에는 첫 번째 저서 『넝마주이들과 함께한 넝마주이(Chiffonnière avec les chiffonniers)』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78년, 사라 수녀와 엠마누엘 수녀는 미국에서 후원금을 모아 진료소, 학교, 유치원, 직업훈련 과정을 갖춘 살람 센터(Salam Center)를 설립했습니다. 1980년에는 세속 단체인 '엠마누엘 수녀의 친구들' 협회(후에 ASMAE로 개명)를 창설하여 수녀 신분과 무관하게 누구나 빈민구제 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1982년에는 에즈베트엘나클을 성모 마리아의 딸들 수녀회에 맡기고, 목카탐(Mokattam)의 넝마주이 공동체를 돌보러 떠났습니다. 기금을 모으고 당국을 적극 설득하며 그녀는 주거 시설과 학교, 진료소 건설은 물론 상하수도와 전력망 구축 사업까지 추진했습니다.

1991년, 엠마누엘 수녀는 서원 60주년을 맞아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집트 국적을 받았습니다. 2년 후 수도회의 요청으로 프랑스로 돌아가야 했고, 목카탐 공동체는 사라 수녀에게 맡겼습니다. 프랑스에서 그녀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고등학교를 방문해 강연하며 각종 협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2002년 1월 1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사령관급(Commander)을 받았고, 2008년 7월 31일에는 대장군급(Grand Officer)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엠마누엘 수녀는 2008년 10월 20일,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남긴 헌신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ASMAE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