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아내, 권력의 정점으로
상나라 왕의 아내였던 푸하오(Fu Hao, 기원전 1250~1200년경)는 권력의 정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대제사장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그녀는 위대한 군사적 승리들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푸하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로 점골(占骨)에 새겨진 명문과 왕릉의 형식, 부장품을 통해서이며, 그녀의 삶에 관한 기록은 단편적인 편입니다.
그녀는 기원전 12세기 초에 재위한 중국 상나라 제22대 왕 무정(武丁)의 아내였습니다. 무정은 주변 부족들이 충성을 맹세하러 올 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 부족에서 한 명씩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푸하오는 이렇게 왕의 64명 아내 중 한 명이었지만, 서열을 거슬러 올라 높은 지위에 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삶
궁정에서 종교 의례, 신에게 바치는 제사, 점복 행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무정은 이를 정기적으로 푸하오에게 맡겼습니다. 그녀는 의식을 주재하고 제물을 준비하며 점괘를 해석했습니다. 점을 칠 때는 거북 등껍질이나 소 뼈를 불에 가열해 금이 갈 때까지 달군 뒤, 그 균열의 모양을 읽어냈습니다. 점친 방법과 결과는 점관이 해당 물건에 새겨 넣었는데, 푸하오의 이름이 적힌 거북 등껍질이 다수 발굴되었습니다.
당시 여성이 대제사장이자 점복자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으며, 이는 푸하오가 궁정에서 특히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권력과 영향력은 종교적 역할뿐 아니라 또 하나의 핵심 분야, 즉 전쟁을 통해서도 발휘되었습니다.
전설의 여장군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푸하오는 여러 차례 군사 원정에서 상나라 군대를 직접 이끌었습니다. 상나라와 토방(土方) 사이에 수십 년간 산발적인 충돌이 이어진 끝에, 그녀는 단 한 번의 전투로 토방을 격파합니다. 뛰어난 전략가였던 그녀는 이(夷), 강(羌), 파(巴)마저 물리쳤으며, 특히 파와의 전투에서 거둔 승리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매복 작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푸하오는 최대 1만 3천 명의 병사를 지휘했고, 지(沚)와 후가오(侯告) 같은 유력한 장군들이 그녀의 부하였습니다. 그녀는 당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상나라 장군이었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역할은 종교적 역할과 함께 문헌 자료뿐 아니라 그녀의 무덤에서 출토된 수많은 무기를 통해서도 입증됩니다.
무정은 푸하오에게 제국 변경의 영지를 하사했고, 그녀는 직접 그곳을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아들 왕자를 낳았는데, 점골 자료에 따르면 출산 당시 궁정에서는 그녀의 건강을 크게 걱정했다고 합니다.
1976년, 온전히 발굴된 푸하오의 무덤
푸하오가 세상을 떠나자 무정은 상나라 수도 안양 근처에 왕릉을 조성했습니다. 1976년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된 이 무덤에는 왕비의 관뿐 아니라 열여섯 구의 해골이 함께 안치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왕비가 죽을 때 순장된 시종이나 노예로 추정됩니다.
무덤은 푸하오의 높은 지위를 보여주는 풍부한 보물과 탁월한 품질의 유물들로 가득했습니다. 대형 전투 도끼를 포함한 청동 무기 130점, 옥기 755점, 뼈로 만든 화살촉, 수많은 제기, 약 7천 개의 패화폐(자개 화폐) 등이 그것입니다. 청동기 대부분에는 왕비의 시호인 '사모신(司母辛)'이 새겨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