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격히 무너져가던 건강
1950년 여름,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기침할 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고, 딸 마니벤은 아버지의 회의와 업무 시간을 대폭 줄이며 전담 의료진을 꾸려 곁에서 살폈습니다.
의사 출신인 서벵골 주지사 비단 로이는 죽음을 앞두고도 유머를 잃지 않던 파텔의 모습을 듣고는 동료 각부 N.V. 가질에게 "이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1950년 11월 2일, 파텔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의식을 잃는 일이 거듭되었고, 결국 그해 12월 12일 치료를 위해 델리로 옮겨졌습니다.
델리행 비행기, 그리고 봄베이의 환영 인파
출발 당일 네루 총리, 라자고팔라차리, 라젠드라 프라사드, 메논 등 주요 지도자들이 델리 공항까지 그를 배웅했습니다. 이미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파텔은 의자째로 비행기에 실렸습니다.
봄베이(현 뭄바이) 산타크루즈 공항에는 그를 맞이하기 위한 거대한 인파가 모여 있었습니다. 혼잡과 소란을 피하기 위해 항공기는 후우 공항에 착륙했고, 그곳에서 주총리 B.G. 케르와 모라르지 데사이가 파텔을 맞이했습니다.
봄베이 주지사의 차량이 마중을 나서서 파텔은 빌라 하우스(Birla House)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 12월 15일, 그는 두 번째 급성 심장발작을 일으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사상 유례없던 추모 행렬
그가 서거한 다음 날, 인도 문관행정단(ICS)과 인도 경찰단(IPS) 소속 1,500명이 넘는 고위 관리들이 델리에 있는 파텔의 관저를 찾아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 인도'에 대한 헌신을 맹세했으며, 이처럼 장엄한 장면은 인도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화장해 달라"는 유언
봄베이 정부는 그의 장례식을 기르가움 초파티(Girgaum Chowpatty)에서 거행할 계획이었지만, 딸 마니벤은 "사르다르는 자신의 장례를 소나푸르(Sonapur)에서 한 명의 평범한 사람처럼 치러달라고 유언했다"며 그 뜻을 받들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 마린 라인스(Marine Lines)로 불리는 곳으로, 파텔의 형제와 부인 역시 같은 자리에서 화장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100만 명의 군중이 운집했습니다. 네루 총리, 라자고팔라차리, 그리고 대통령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 역시 참석해 마지막 배웅길에 함께했습니다.
파텔의 죽음을 접한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지는 "같은 사람이 저항자이자 정치가로서 모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파텔은 바로 그 예외였다"며 그를 추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