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사르다르 파텔, 비슈누굽타 차나키야와 사무드라굽타에 견줄 인도의 건국 설계자였다!

사르다르 파텔, 비슈누굽타 차나키야와 사무드라굽타에 견줄 인도의 건국 설계자였다!

여러 진영에서 제기된 비판들

인도 분할 당시 사르다르 파텔은 힌두교 쪽에 치우친 공동체 정치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마울라나 아자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파텔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비판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는데, 힌두 민족주의 세력은 그가 인도 분할을 너무 성급하게 수용했다고 지적했고,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지지자들은 파텔이 평생 간디의 편에 서서 간디의 반대파들을 약화시키는 데 앞장섰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주의 지도자 자야프라카시 나라얀과 아쇼크 메타는 파텔이 인도 산업계, 특히 비를라 가문과 사라바이 가문 같은 대기업가들의 편을 들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또한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가 번왕국(토후국)들이 자율적인 판단과 의지로 통합 작업에 참여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증명한 진실

그러나 역사는 파텔에게 제기된 이 모든 비난이 근거 없는 것임을 입증해 왔습니다. 오히려 '인도의 철인'이라 불리는 그는 분열될 뻔한 대륙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낸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차나키야와 사무드라굽타에 버금가는 업적

인도의 통일과 500개가 넘던 번왕국의 통합이라는 위대한 성취에서, 이 나라는 파텔에게 고대의 국가 건설자인 비슈누굽타 차나키야,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사무드라굽타만큼이나 깊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와 산업계 거목 J.R.D. 타타는 파텔이 네루보다 더 훌륭한 총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인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내무부 장관으로 평가받으며, 1947년 1월호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표지에 그의 초상을 실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정치가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은 "반군(반체제 인사)으로서와 국가 지도자로서 양쪽에서 모두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파텔은 바로 그 예외였다"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늦게나마 시작된 재평가

아이러니하게도 파텔 사후 오랫동안 정부는 그에 관한 문헌을 출간하지도 않았고 추념 행사를 개최하지도 않았습니다. 1980년에야 구자라트주 아메다바드에 사르다르 파텔 국립 기념관이 설립되었고, 1991년에는 인도 최고의 민간인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가 추서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는 인도 통일의 아버지로서 그 제몫을 되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