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111. 파텔의 단호한 한마디, 셰이크 압둘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111. 파텔의 단호한 한마디, 셰이크 압둘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런던 인터뷰로 드러난 독립 야망

1949년, 유엔(UN)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견된 인도 대표단에는 잠무·카슈미르의 지도자 셰이크 압둘라(Sheikh Abdullah)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귀국길에 오른 셰이크는 런던에서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와의 인터뷰를 통해, 카슈미르를 인도와 파키스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국가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습니다.

당시 인도의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었던 '철인'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Sardar Vallabhbhai Patel)은 이 발언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신생 인도 연방의 통합을 총괄하던 그에게 카슈미르의 분리 독립 시도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파텔의 역제안, "원한다면 인도군을 철수시키겠다"

파텔은 즉시 셰이크를 델리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냉철하지만 강력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카슈미르의 독립을 원한다면, 기꺼이 인도군을 철수시켜 주마."

이 말을 들은 순간 셰이크의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도군이 카슈미르 계곡에서 철수하는 순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파키스탄이 곧바로 그 지역을 장악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신은 독립은커녕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결국 셰이크는 자신의 야망이 현실성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파텔의 논리 앞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텔이 살아 있는 동안, 셰이크의 침묵

이 사건 이후 셰이크 압둘라는 파텔이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분리 독립에 대해 공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파텔의 간파력과 결단력이 그의 야망을 완전히 짓눌러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1950년 12월 15일 파텔이 세상을 떠나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강력한 견제자를 잃은 셰이크는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금 분열적인 정치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