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올리비아 후커: 털사 학살 생존자이자 미국 해안경비대 최초의 흑인 여성

올리비아 J. 후커(Olivia J. Hooker, 1915~2018)는 미국 해안경비대에 입대한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이후 심리학자이자 교육자가 되었습니다. 털사 인종 폭동의 생존자였던 그녀는 평생을 통해 정의를 위해 싸웠습니다.

털사 학살

올리비아 J. 후커는 1915년 2월 12일 오클라호마주 머스코지에서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 아니타 J. 후커와 사업가 아버지 새뮤얼 D. 후커 사이의 다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그린우드 지역에 정착했는데, 이곳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운영하고 소유한 상점과 서비스 시설이 많은 번영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올리비아가 겨우 여섯 살이던 1921년 5월, 흑인 구두닦이 딕 로울런이 백인 소녀 사라 페이지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린치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흑인 남성들이 보안관에게 그를 보호해 달라고 나섰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에 백인 무리들이 무장을 하고 경찰서 앞에 모였고, 첫 총성이 울리면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첫 충돌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흑인 남성들이 그린우드 지역으로 물러나자 백인 폭도들이 뒤쫓아갔습니다. 그들은 무기 상점을 약탈하고 군중에게 함부로 발포하며 상점과 가옥에 불을 질러 공포와 혼란을 퍼뜨렸습니다. 학살은 다음 날까지 계속되어 1921년 공식 집계로는 36명, 2001년 최종 보고서 기준으로는 100명에서 300명 사이가 사망했습니다. 약 800명이 병원에 실려갔고, 화재로 8,000명의 흑인 주민이 집을 잃었으며, 6,000명이 체포되어 구금되었습니다.

학살 당시 쿠 클럭스 클랜(KKK) 일당이 올리비아의 집을 약탈했고, 그녀와 형제자매들은 테이블 아래에 숨어 몸을 피했습니다. 폭동 이후 많은 생존자들처럼 올리비아의 가족도 털사를 떠나 오하이오주 컬럼버스로 이주했습니다. 이 사건은 올리비아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녀는 다시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미국 해안경비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컬럼버스에서 올리비아는 학업을 계속하여 1937년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문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재학 중 흑인 여학생들을 위한 델타 시그마 세타(Delta Sigma Theta) 자매결연단에 가입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의 해군 입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올리비아는 미 해군 여성 부대인 웨이브즈(WAVES, Women Accepted for Volunteer Emergency Service)에 지원했지만, 피부색이 검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미국 해안경비대(United States Coast Guard) 여성 부대에 지원했고, 1945년 2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안경비대에 복무하는 흑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수주간의 훈련 후 올리비아는 보스턴으로 파견되어 행정 업무를 수행했으며, 서기 2등병(Yeoman Second Class) 계급을 얻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1946년 6월 해안경비대 여성 예비군이 해체되면서 그녀는 하사 2급(petty officer 2nd class) 계급과 모범복무상을 받고 전역했습니다.

심리학자이자 교육자

전역 후 저축한 돈으로 학업을 이어간 올리비아는 1947년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 그녀는 뉴욕주 앨비언의 여성 교도소에서 지적 장애가 있다고 분류된 여성 수감자들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 올리비아는 수감자들을 재평가하고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이 성공을 "열린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이 경험 이후 올리비아는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다운증후군 아동의 학습 능력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좌절도 있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1961년 드디어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63년에는 뉴욕 포덤 대학교에 합류하여 1985년까지 부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올리비아는 지적 및 발달 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심리학회 제33분과(APA Division 33)의 공동 창립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87세의 나이까지 일하다 은퇴했습니다.

평생을 건 정의 추구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종 폭력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털사 폭동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진 사건이었습니다. 학살로 깊은 상처를 입은 올리비아 후커는 평생 동안 이 사건의 역사적 인정과 정의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특히 생존자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며 활동했고, 약 75년 만에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설립된 털사 인종 폭동 위원회(Tulsa Race Riot Commission) 설립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2003년에는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지만 배상받지 못했습니다. 2008년에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비포 데이 다이(Before They Die)'의 제작과 배급에 참여하며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이어갔습니다.

2018년 11월 10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올리비아 후커는 털사 학살의 마지막 생존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