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74. 사다르 파텔은 결코 무슬림과 파키스탄의 적이 아니었다

74. 사다르 파텔은 결코 무슬림과 파키스탄의 적이 아니었다

1947년 8월 15일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총리로 취임할 때, 사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은 부총리로 임명되어 내무부를 맡았습니다. 외무부는 네루가 계속 담당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가 독립을 맞자마자 내무장관 파텔 앞에는 세 가지 거대한 과제가 놓였습니다. 인도 내 562개 토번(왕후국)을 설득해 통합하는 일, 국내외의 공동체 폭력을 진정시키는 일,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몰려오는 난민들의 재정착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었지만, 사다르 파텔은 어려운 일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세 가지 난제에 동시에 맞서다

파텔은 이 세 가지 업무에 동시에 착수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도망쳐 온 난민들은 힌두교도들이 대거 살해되고 약탈당했다는 참상을 전했고, 이로 인해 공동체 폭력은 암리차르에서 델리까지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통찰력과 강철 같은 의지가 필요했습니다.

펀잉 방문으로 폭력을 잠재우다

사다르 파텔은 직접 펀잡을 방문해 암리차르에서 대규모 대중 집회를 열고 시크교도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지금 폭력을 멈추지 않으면 파키스탄에서의 유혈 사태도 오래 지속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곳에 남아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을 구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파텔의 펀잡 방문 이후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폭력 사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아울러 파텔은 수도 델리에서 벌어진 폭동 역시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반무슬림' 오해에 대한 간디의 반박

파키스탄 건국 이전부터 사다르 파텔은 진나와 그의 동료들의 교조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파텔을 반무슬림 인물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간디는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다르 파텔을 이해하는 데 착각이 있다. 그가 힌두-무슬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나와 다를 뿐이다. 그를 반무슬림이라 부르는 것은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간디의 측근이었던 피야렐랄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때때로 사다르 파텔은 무슬림과 파키스탄의 적으로 보여지지만, 이보다 더 큰 잘못된 평가는 없다. 인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며 남기로 결심한 무슬림들을 따뜻하게 대우하고 정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결단한 사람이 바로 사다르였다."

훗날 인도 총리가 된 모라르지 데사이 역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약 20년간 사다르의 지도 아래 일할 기회를 가졌다.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 단언할 수 있다. 사다르는 공동체·카스트·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모든 종교와 공동체에 선의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