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93. 사르다르 파텔, 인도 문관 서비스(ICS) 유지를 결심하다

93. 사르다르 파텔, 인도 문관 서비스(ICS) 유지를 결심하다

인도 독립과 남인도 출신 관료들의 시대

인도가 독립을 맞던 당시 인도 문관 서비스(ICS)는 남인도 출신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다크시나티야(Dakshinatya)라 불린 이들 남인도 관료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에, 영국 식민지 통치 시절에는 "델리는 마드라시와 하급 하인(Bai Peon)이 다스린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관료 조직이 인도 독립의 역사적 순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나아가 국가 지도자들에게 봉사할 것을 청했고, 이러한 이유로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은 인도 문관 서비스 소속 관료들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라푸타나 4대 번왕국의 남인도 출신 수상들

흥미롭게도 인도 독립 당시 라자스탄 지역, 당시 라푸타나로 불리던 4대 주요 번왕국의 수상(디완)은 모두 남인도 출신이었습니다. 우다이푸르에는 T. 비자야라가바차리 경, 자이푸르에는 V.T. 크리슈나마차리 경, 조드푸르에는 C.S. 벤카타차르, 비카네르에는 K.M. 파니카르 경이 각각 재직하며 하나의 강력한 그룹처럼 활동했습니다.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협력한 이들은 라푸타나 4개 번왕국을 매개로 인도 정치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국가 분열을 막은 숨은 공헌자들

번왕국의 인도 편입 과정과 이후 라자스탄 통합에서 이들 다크시나티야 수상들의 역할은 매우 효과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V.T. 크리슈나마차리(자이푸르), K.M. 파니카르(비카네르), M.A. 스리니바산(그왈리오르), B.L. 미트라 경(바로다), C.S. 벤카타차르(조드푸르) 등은 양측을 한데 모으고, 인도가 발칸 반도의 여러 국가처럼 분열되는 비극을 막겠다는 고결한 목표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만약 이들의 위대한 노력이 없었다면, 1947년 6월 3일 마운트배튼 총독의 독립 선언부터 8월 15일 독립까지 불과 11주 만에 이루어진 번왕국 통합이라는 기적 같은 성과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텔과 네루, 관료제를 두고 벌인 논쟁

사르다르 파텔은 런던에서 변호사로 수학한 경험과 특유의 카리스마 덕분에 이들 관료들의 경험과 지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이 관료 집단이 지닌 높은 오만함이 민주주의에 해롭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명확했습니다. 인도 가난한 대중의 삶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한 공복이지, 오만하고 딱딱한 관료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네루는 독립 후 이러한 문관 서비스 제도를 폐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르다르 파텔은 이들 관료의 실질적 필요성을 정확히 간파하고, 제도를 유지하되 '인도화'하는 방안을 지지했습니다. 의회에서 벌어진 긴 논쟁 끝에 최종적으로 승리한 사람은 파텔이었습니다.

ICS에서 IAS로, 검은 사히브에서 애국자로

내무부 장관으로서 파텔은 인도 문관 서비스(ICS)를 인도화하여 인도 행정 서비스(IAS)로 개편했고, 영국을 섬기던 '검은 사히브(black sahib)'들을 애국적인 공무원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역사가들은 만약 사르다르 파텔이 몇 해 더 살았더라면, 인도 관료제 전반에 걸친 완전한 개혁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