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75. 사르다르 파텔, 난민 재정착을 위해 밤낮없이 헌신하다

75. 사르다르 파텔, 난민 재정착을 위해 밤낮없이 헌신하다

인도의 초대 내무장관 사르다르 파텔에게 분할 직후 안겨진 두 번째 큰 과제는 바로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에서 몰려오는 난민들을 신속하게 정착시키는 일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마이클 브레처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인구 교환에 대해 기록하기를, 소문과 공포, 광기 어린 분위기 속에 약 1,200만 명이 양국 사이를 이동했으며 그 절반은 힌두교도, 나머지 절반은 무슬림이었다고 했다.

모즐리는 이 숫자를 약 1,400만 명으로, 작가 쿠슈완트 싱은 약 1,000만 명으로 추산했다. 따라서 대략 500만~600만 명이 파키스탄 지역에서 인도로 피난해 왔고, 같은 수의 사람들이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떠났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방대한 인구를 재정착시키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문제였다.

델리를 채운 난민들

동파키스탄에서 대규모 난민이 인도로 넘어오기 시작하자 사르다르 파텔은 파키스탄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난민 유입이 멈추지 않으면, 들어오는 인구 비율에 상응하는 영토를 파키스탄에 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고는 파키스탄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결국 인도의 수도 델리는 서·동파키스탄 출신 난민들로 가득 차 버렸다.

저녁에는 텅 빈 들판으로 보이던 곳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수천 명의 난민들이 하룻밤 새 야영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렸고, 겨울 추위와 비, 각종 질병에 신음하며 파키스탄에 남긴 모든 재산을 등지고 떠나온 처지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연민의 마음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이들 중 다수는 파키스탄에서 가족과 친척을 살해당했기에 분노 또한 극에 달해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당한 학살과 폭력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도에서도 보복을 시도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사르다르 파텔은 델리 전역에 대규모 경찰과 군대를 배치하여 종교 폭동이 수도로 번지지 않도록 철저히 막았다.

밤낮없이 이어진 재정착 작업

사르다르 파텔의 내무부는 난민 재정착을 위해 밤낮없이 움직였다. 이토록 거대한 위기는 독립의 기쁨마저 옅게 만들어 버렸다. 정부는 여러 곳에 난민을 위한 천막을 세우고 식수를 공급했으며, 임시 화장실과 병원을 빠르게 지어냈다.

파텔은 국방장관 발데브 싱에게 영국군이 떠나며 남긴 웨이블 캔틴 건물을 난민들의 임시 거처로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발데브 싱은 웨이블 캔틴뿐 아니라 대량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아친 호숫가 휴양 부지까지 내무부에 넘겨주었다.

이윽고 파텔은 영국 병사들이 철수한 뒤 대규모 군용 막사가 공석으로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발데브 싱에게 그 막사들마저 요청해 확보했다. 원래부터 소박하고 담백한 성품의 사르다르 파텔은 구자라트의 민중 운동 시절 여러 차례 국민들에게 기부금을 모아 대중의 문제를 해결해 온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도움을 구하는 일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물자를 모아 난민들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