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복종 운동이 사르다르 파텔의 손에 넘어가면서 운동은 자연스럽게 더욱 격렬해졌습니다.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자 영국 당국은 당황하여 국민회의 노동위원회의 활동을 금지하고 전국의 사무소를 봉쇄해 버렸습니다.
이에 사르다르 파텔은 크게 외쳤습니다. "오늘부터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우리의 활동가이며, 모든 가정이 우리의 사무실이다. 정부에게 힘이 있다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을 체포하고 모든 집을 압수해 보라!" 이 사자 같은 포효에 영국인들의 심장은 얼어붙었습니다. 그들은 사르다르 파텔이라는 인물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국민회의 금지 이후 투쟁이 더욱 격화되자 정부는 마침내 사르다르를 체포하기로 결정합니다. 1930년 7월 31일, 로크마냐 발 강가다르 티락 탄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사르다르 파텔은 봄베이에서 대규모 행진을 계획했습니다. 정부는 행진을 금지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거리 위에 앉아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사르다르 파텔 자신이 그들의 선두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밤새 거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르다르 파텔 역시 도로 위에 앉은 채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자 정부는 거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여성과 아이들조차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르다르 파텔 또한 곤봉에 맞아 끌려갔습니다. 그는 다시 3개월형을 선고받고 예르와다 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르다르가 감옥에 있는 동안, 경찰은 그의 가족들을 향해 악랄한 괴롭힘을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사르다르의 집에 난입하여 80세 고령의 노모에게까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영국은 지난 200년간 '미개한 인도인을 문명화하러 왔다'며 인도를 통치해 왔습니다. 그러나 무고한 사르다르의 가족과 늙은 어머니에게 가한 그런 만행은 인류의 역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부엌에 들어가 쌀을 지어 놓은 솥에 돌과 잡석을 마구 던져 넣었습니다. 부엌에 있던 물건들은 집 밖으로 내던져졌고, 남겨진 물건들에는 등유와 먼지가 뿌려졌습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사자(사르다르)는 감옥에 갇혔고, 자칼들이 그의 집을 유린하고 있다." 격분한 수천 명의 군중이 경찰을 응징하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누군가 감옥에 있는 사르다르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즉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지 말고 평화를 지켜라." 사람들은 사르다르의 명령을 조용히, 그러나 굳건히 받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