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피에르 비크튀르냉 베르냐우드(1753~1793), 지롱드파를 이끈 웅변가의 최후

보르도의 변호사에서 혁명 정치가로

피에르 비크튀르냉 베르냐우드(Pierre Victurnien Vergniaud)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활동하던 변호사 출신 정치가로, 입법의회에 이어 국민공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뛰어난 웅변력과 연설 재능을 지롱드파(Girondin)를 위해 아낌없이 발휘했으며, 당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자리매김했다.

전쟁 지지와 8월 10일의 위기

1792년부터 베르냐우드는 다른 지롱드파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브리소(Brissot)의 노선을 지지하며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개시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10일, 그는 입법의회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음에도 파리 민중의 봉기를 막지 못했고, 결국 국왕의 몰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산악파와의 대립, 그리고 단두대로

이후 베르냐우드는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산악파(Montagnards)에 맞서는 정치적 투쟁에 주력했다. 그러나 1793년 4월 뒤무리에(Dumouriez) 장군의 적진 투항 사건이 터지면서 지롱드파는 치명타를 입었고, 베르냐우드는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속에서 단두대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