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61. 나리만, 사르다르 파텔을 '공동체주의자'라고 비난하다

61. 나리만, 사르다르 파텔을  공동체주의자 라고 비난하다

선거 전후의 갈등

중앙 입법의회(Central Legislative Assembly) 선거는 주 입법의회 선거에 앞서 실시되었습니다. 봄베이에는 두 개의 의석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국민회의가 두 석을 모두 차지했고 K. F. 나리만과 데슈무크 박사에게 출마 티켓이 돌아갔습니다. 당시 나리만은 봄베이 국민회의 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한 석은 나리만에게 내주고, 다른 한 석은 비(非)국민회의 후보인 카와스지 제한기 경(Sir Kawasji Jehangir)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리만 역시 "봄베이에서는 국민회의가 한 곳에만 후보를 내는 편이 낫다"는 취지의 공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사르다르 파텔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입후보 포기와 무슨시의 낙선

입후보 등록 시점이 되자 나리만은 서류 작성을 거부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중앙 의회위원회 의장 발라브바이 파텔은 나리만의 행동을 불공정하고 반당적인 것으로 간주해 그의 입후보 자격을 취소했고, 대신 카나이얼랄 무슨시(Kanhaiyalal Munshi)를 국민회의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분노한 나리만은 당 내부에서 방해 공작을 벌였고, 결국 무슨시는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주 선거 승리와 리더십 좌절

중앙 입법의회 선거가 끝나자 이어서 주 입법의회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 선거에서 나리만은 봄베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의회 내 국민회의 대표로 선출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사르다르 파텔과 당 최고 지도부는 나리만의 반당 행위를 잊지 않았고, 결국 나리만 대신 발라샤브 케르(Balasaheb Kher)가 의회 내 당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공동체주의' 비난과 네루의 중재

나리만은 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신문들을 통해 사르다르 파텔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들을 쏟아냈습니다. 요컨대 "파텔은 공동체주의자이기 때문에 파르시(Parsi) 종교인인 나리만을 봄베이 입법의회의 국민회의 대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이후 나리만은 신문 기사 스크랩을 첨부해 국민회의 총재 자와할랄 네루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문제 해결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네루는 "내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원한다면 국민회의 노동위원회(Working Committee)에 이 문제를 상정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나리만은 "노동위원회의 결정이 공정할지 의심스럽다"고 답장했습니다. 그러자 네루는 "그렇다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추밀원(Privy Council) 또는 그보다 더 높은 기구에 사안을 가져가도 좋다"고 강경하게 응수했습니다.

간디의 조사와 최종 판정

나리만은 굴하지 않고 사건의 전말을 간디에게 편지로 알렸습니다. 간디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리만에게 "원한다면 나(간디)와 D. N. 바하두르(파르시 지도자)가 조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나리만은 간디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사 결과 간디와 D. N. 바하두르는 "이번 일은 사르다르 파텔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판정했고, 나리만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나리만은 처음에는 이 결정을 받아들였으나, 나중에는 이를 번복했습니다. 이에 간디는 자와할랄에게 "나리만의 전반적 행태를 볼 때 그는 어떠한 직책도 맡을 능력이 없음이 분명하므로, 앞으로 그에게 어떠한 직위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