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62. 사르다르 파텔,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한번 간디의 편에 서다

62. 사르다르 파텔,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한번 간디의 편에 서다

1939년, 인도 국민회의는 트리푸리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부분의 주에서 수바스 찬드라 보스를 이번 대회 의장으로 추천했는데, 그는 이미 지난해 대회를 주재한 바 있었고 당시 인기가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반면 회의 내 간디파 지도자들은 마울라나 아자드를 의장으로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수바스 바부는 자신이 직접 의장을 맡아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야만 국민회의가 영국 부총독과 무책임하게 타협하거나 부당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시 의장에 선출된다면 최소 1년간 당의 지도권을 쥘 수 있었고, 그는 이 기간을 활용해 세계대전이라는 격랑 속에서 부총독과 조국의 독립을 협상하려 했습니다.

자와할랄 네루, 잠날랄 바자즈, 간디지,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 등 거물급 지도자들은 수바스 바부에게 후보 사퇴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주에서 내 이름이 추천되었다. 나는 반드시 의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마울라나 아자드는 수바스 바부와 정면으로 맞서 선거전을 벌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병을 핑계로 후보직을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간디지는 닥터 팟타비 시타라마이야를 자신의 후보로 공식 지명했습니다. 이제 선거를 미룰 수 없게 되자, 간디와 그의 추종자들은 승리를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선거 전날 밤, 간디지는 잠도 이루지 못한 채 국민회의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후보에게 표를 행사해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깨뜨렸습니다. 수바스 바부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한 것입니다. 간디지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이것은 나의 패배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평생 절제의 덕목을 가르쳐 온 간디지는 이 패배 앞에서 절제를 잃었고, 국민회의 내부에 반란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간디지의 뜻에 따라 당 집행위원회(워킹 커미티) 소속 15명의 위원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던졌습니다. 수바스 바부는 국민회의의 분열을 막으려 애썼지만, 간디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미 그와의 연을 끊기로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수바스 바부는 당이 쪼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간디의 지지자들은 즉각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를 새 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 많은 국민회의원들은 사르다르 파텔이 간디를 떠나 네타지 수바스 찬드라 보스를 지지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사르다르 파텔은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끝내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는 이미 간디를 자신의 장군, 즉 사령관으로 선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라의 명예가 진정으로 위협받지 않는 한, 그는 결코 그 군대를 떠날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