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의 왕비, 첼레의 안나
첼레의 안나(Anna Cylejska, 1381~1416)는 폴란드의 왕비로, 리투아니아 대공이자 폴란드 국왕인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의 두 번째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카지미에시 3세 대왕(카지미에시 비엘키)과 자간의 야드비가의 손녀로, 부모는 카지미에시 대왕의 딸 안나와 첼레 백작 빌헬름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문적 배경 덕분에 '첼레의 안나'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394년 아버지 빌헬름이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텍 백작과 재혼하면서, 어린 안나는 외삼촌인 첼레 백작 헤르만 2세의 궁정에서 성장했습니다.
혼담과 결혼 과정
1400년, 폴란드 사절단이 첼레 영지를 찾아 안나와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우워의 혼인을 정식으로 제안했습니다. 이 결혼은 야드비가 여왕과 폴란드 귀족들의 권유로 추진된 것으로, 야기에우워의 폴란드 국왕으로서의 입지를 한층 더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안나와 야드비가가 모두 브와디스와프 우카테크의 증손녀라는 친연관계였기 때문에, 교황 보니파시오 9세로부터 혼인 특별 허가(면벽)를 받아야 했습니다.
1401년 7월 16일 안나의 행렬이 크라쿠프에 도착했지만,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우워는 미래의 아내의 미모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해 그녀를 돌려보내자고 제안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폴란드어를 익혀야 한다는 명분으로 혼례는 몇 달간 연기되었고, 최종적으로 1402년 1월 29일 크라쿠프 대성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403년 2월 23일, 안나는 폴란드의 여왕으로 대관식을 올렸습니다.
왕비로서의 삶
브와디스와프와의 결혼 생활 동안 안나는 여러 차례 불륜 혐의를 받았지만, 이러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1408년 안나는 딸 야드비가를 낳았습니다. 남성 계승자가 없던 상황에서 야드비가는 1413년 왕위 계승자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같은 해 부부와 딸은 함께 리투아니아와 사모기티아(주무트)를 순방했으며, 안나는 또한 호로들레 동맹 체결 현장에도 참석했습니다.
말년과 유산
안나는 크라쿠프 대학교의 학문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인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1416년 3월 21일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바벨 대성당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