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 개척자

개척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1903~1999)은 기능적이고 혁신적인 생활 공간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통해, 디자인을 더 나은 사회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첫 번째 성공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 개척자

샤를로트 페리앙은 1903년 10월 24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오트쿠튀르 업계에서 재봉사로 일했고, 아버지는 양복점을 운영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그림 실력을 교사들에게 인정받았고, 어머니의 격려 속에 열일곱 살에 중앙장식미술학교(Union Centrale des Arts Décoratifs)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디자인과 장식예술을 공부한 뒤 5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1925년 졸업했습니다.

졸업 다음 해인 1926년, 페리앙은 파리 장식예술가 협회 전시회(Salon des Artistes Décorateurs)에 유리 상판 테이블을 출품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혁신적인 작품 세계는 곧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1927년에는 자신의 다락방 아틀리에를 직접 리모델링해 벽걸이형 바와 사이드 테이블, 스툴, 벤치를 강철·알루미늄·유리 소재로 꾸몄습니다. '지붕 밑의 바(Bar sous le toit)'라 불린 이 작품을 파리 가을 살롱에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

페리앙은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르 코르뷔지에에게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의 저서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와 『오늘날의 장식예술(L'art décoratif d'aujourd'hui)』을 읽으며 그의 장식예술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 두 책을 읽던 경험은 눈부셨다. 미래를 막고 있던 벽을 넘게 해준 것은 바로 이 책들이었다."

1927년 10월, 페리앙은 용기를 내어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지원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우리 여기선 방석 자수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는 떠나기 전 자신의 '지붕 밑의 바'가 가을 살롱에 출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직접 전시를 찾은 르 코르뷔지에는 스물넷의 젊은 여성의 작품 세계에 매료되어 그녀를 고용했습니다. 이후 페리앙은 10년 동안 르 코르뷔지에와 그의 사촌 피에르 주네레(Pierre Jeanneret)와 함께 일하며 사무소 프로젝트의 가구와 설비를 담당하고 수많은 박람회에 참여했습니다.

1928년에는 르 코르뷔지에와 주네레가 설계한 메종 라 로슈(Maison La Roche,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와 빌라 처치(Villa Church)의 가구를 맡았습니다. 이때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훗날 큰 성공을 거둔 안락의자 LC4입니다. 그녀는 단순함과 절제를 추구했으며, 진보적 성향의 활동가로서 전통적이면서도 튼튼하고 값싼 소재를 선호했습니다.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 개척자

일본 체류

르 코르뷔지에와의 10년 협업 이후, 페리앙은 그의 영향력과 그림자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새로운 예술적 관계를 구축하기로 결심합니다. 남성 중심의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예술가였던 그녀는 작품의 성공과 비평가들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1929년에는 근대예술가연합(UAM)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 되었고, 이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장 프루베(Jean Prouvé), 폴 넬슨(Paul Nelson) 등과 협업했습니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페리앙은 일본에 머무르며 상공성의 공예 자문관으로 활동했습니다. 현지 문화에 깊이 매료된 그녀는 장식예술 강연을 열고 전시회를 조직하는 한편 창작 활동도 계속했습니다. 전통 일본 주택과 공예품은 단순함, 기능성, 경제성을 추구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자 했던 그녀의 작품 세계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에 돌입하면서 그녀의 체류는 제한된 상태로 바뀌었고, 이후 베트남으로 옮겨가 머물러야 했습니다. 1947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녀는 1955년 다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레자르크(Les Arcs) 리조트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 개척자

프랑스로 돌아온 페리앙은 장 프루베와의 협업을 재개했습니다. 1967년부터 1989년까지 그녀는 인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바로 사부아(Savoie) 지방 레자르크 리조트의 아르크 1600과 아르크 1800 마을 건설입니다. 스키와 산을 사랑했던 그녀는 이미 1930년대부터 자신만의 완벽한 스키 리조트를 구상해 왔습니다. "사면을 따라 올라가며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각 층이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레자르크에서 페리앙은 주거 및 호텔 건축은 물론 실내 마감, 가구, 심지어 생활용품까지 폭넓게 담당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혁신적인 개념과, 단순함과 자연을 사랑했던 그녀가 아꼈던 전통 소재—목재(특히 낙엽송), 석재, 슬레이트—가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사생활이 보호되는 기능적인 주거 공간을 만들고, 차량을 외곽으로 밀어내 보행자 중심의 거리를 지키는 등 앞선 도시 계획을 적용했습니다.

1993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열린 일본 문화 행사 '문화 간의 대화(Dialogue des cultures)'를 위해 일본 정자에서 영감을 받은 임시 다찻집(티하우스)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회고록 집필에 몰두하던 그녀는 1999년 10월 파리에서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