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칼리굴라(Caligula, 기원후 12년~41년): 로마 제국의 폭군 황제

칼리굴라(Caligula): 로마 제국의 폭군 황제

칼리굴라(Caligula, 기원후 12년~41년): 로마 제국의 폭군 황제칼리굴라는 기원후 37년부터 즉위한 고대 로마의 황제로, 기원후 12년 8월 31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명장 게르마니쿠스와 대(大)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어머니는 기원후 29년 판다테리아 섬으로 유배되어 33년에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칼리굴라'라는 별명은 그가 어린 시절 신었던 군화 '칼리가(calig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기원후 37년 티베리우스 황제가 77세로 사망하자, 칼리굴라는 같은 해 3월 18일 새 황제로 공인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훗날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근위대장 마크로와 밀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즉위 초기에는 유배자들의 귀환을 허용하고 대역죄 재판을 중단하는 등 온정적인 정책으로 통치를 시작했으며, 재위 기간 동안 아우구스투스 신전의 건축이 완공되었습니다.

폭주하기 시작한 통치

그러나 즉위한 해인 37년, 칼리굴라는 심각한 병을 앓았고, 회복된 이후 그의 정신 상태는 점점 의심스러워졌습니다. 그는 한때 중단했던 대역죄 재판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티베리우스의 손자에게 자살을 강요했고, 나중에는 은인이었던 마크로와 그의 아내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가 애마를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싶어 했다는 일화 역시 오늘날까지 널리 회자됩니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 방식은 국가 재정을 크게 악화시켰고, 이를 만회하고자 기원후 41년에는 재산 몰수와 12.5% 소득세 부과라는 강경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암살과 최후

게르만족 원정 준비 과정에서는 쿠데타 계획이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기원후 40년에는 갈리아 지역에서 브리튼 원정을 준비했으나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직접 로마로 초청했던 클레오파트라의 손자이자 마우레타니아의 왕 프톨레마이오스를 살해하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날로 심해지는 테러 정치와 정치적 숙청, 황제의 광기는 반대 세력의 여론만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결국 기원후 41년 1월 24일, 칼리굴라는 근위대 장교 카시우스 카레아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의 다음 황제로 즉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