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기원후 14년)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기원후 14년)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고대 로마 최초의 황제로, 기원전 63년 9월 23일에 태어났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었으며, 카이사르 암살 이후 처음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대립했지만, 기원전 43년 나르본 갈리아 총독 레피두스와 함께 동맹을 맺어 제2차 삼두정치를 수립했다. 이들은 서로 세력권을 분할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지역을 차지했다.

필리피 전투와 삼두정치의 붕괴

기원전 42년 가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필리피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암살자인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를 격파했다. 이후 기원전 36년, 옥타비아누스는 레피두스의 영토와 군대를 빼앗아 그를 삼두정치에서 배제했다. 한편 클레오파트라와 손잡은 안토니우스와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다. 기원전 31년 9월 2일, 아그리파가 지휘하는 함대가 악티움 해전에서 두 사람의 함대를 격파했고,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하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로마 영토의 대확장

옥타비아누스의 통치 기간 동안 로마의 영토는 크게 확장되었다. 이집트를 비롯해 히스파니아의 잔여 지역과 갈라티아 등을 정복하며 로마의 판도를 한층 넓혔다.

'아우구스투스' 칭호와 제정의 시작

기원전 28년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 수석 의원(princeps senatus)'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듬해 일곱 번째 집정관으로 선출된 그는 삼두정치관의 권한을 스스로 반납하며 공화정 복귀를 선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존엄한 칭호를 하사했다. 이후 그는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로서 통치했으며, 기원전 27년 1월 16일은 로마 제정의 시작으로 간주된다. 기원전 23년에는 종신 호민관 권한을 얻었고, 기원전 12년에는 최고 사제(pontifex maximus)에 임명되었다.

말년과 죽음

기원전 2년, 그는 '국부(pater patriae)'로 추대되었다. 같은 시기 딸 율리아는 음모에 연루되어 추방당했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후 14년 8월 19일 캄파니아의 놀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으로 전해지는 말은 "시민들이여, 박수를 보내라. 코미디가 끝났다"이다. 그 뒤를 이어 세 번째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의 아들인 티베리우스가 제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