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로마 역사상 최연소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파란만장한 생애 (203~222)

로마 역사상 최연소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파란만장한 생애 (203~222)

헬리오가발루스 (사진: 퍼블릭 도메인)

엘라가발루스 (203~222)

출생과 배경

엘라가발루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 기원후 203년 시리아의 도시 에메사에서 '바리우스 아비투스 바시아누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신 발(바알)을 섬기는 집안이었으며, 어머니는 군단병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카라칼라 황제의 사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바리우스가 카라칼라의 사생아라는 소문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바알의 사제였던 이 청년은 '엘라가발루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 이름은 그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따라다니게 됩니다.

14세의 즉위

217년 카라칼라가 암살되면서 권력은 근위대장 마크리누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에 엘라가발루스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고, 군인들에게 열네 살 소년이 선대 황제의 친아들이라고 설득했습니다.

218년 5월 16일, 군단병들은 그를 황제로 추대했습니다. 곧이어 엘라가발루스의 군대는 마크리누스의 군대를 격파했고, 전장에서 도주하던 마크리누스는 살해당했습니다. 원로원은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의 통치자를 받아들였지만, 실질적인 국정은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타락한 통치

그러나 곧 엘라가발루스의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지 세력은 그가 로마인들의 가장 성스러운 신인 카피톨리노 유피테르보다 발을 더 중요한 신으로 삼고, 그를 기리는 축제에서 문란한 의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국가의 핵심 인물들에게 자신을 숭배하고 피비린내 나는 의식에 동참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심지어 미모의 젊은 남성들을 골라 인신공양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생활 또한 스캔들로 가득했습니다. 최고의 자손은 대사제와 여사제의 결합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던 그는 베스타 무녀와 결혼했습니다. 마음이 변하면 그녀를 버리고 유부녀를 탐했으며, 심지어 그 여성의 남편에게 처형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더욱이 역사가 람프리디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하들을 시켜 성기가 큰 남자들을 찾아 궁정으로 데려오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몰락과 최후

그는 황궁을 일종의 창관으로 만들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대신 점점 더 많은 남자들과의 향락에 빠져들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한 할머니는 그에게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를 입적시켜 후계자로 삼으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군단병들은 황제의 기행을 더 이상 참지 못했습니다. 222년, 엘라가발루스와 그의 어머니는 함께 암살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