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동차 선구자이자 발명가인 베르타 벤츠(Bertha Benz, 1849~1944)는 1888년, 짧고 통제된 시험 주행의 틀을 넘어 최초로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감행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또한 최초의 브레이크 패드를 개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기술에 대한 열정
베르타 링거(Bertha Ringer)는 1849년 5월 3일, 독일 남서부 포르츠하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물의 작동 원리에 남다른 호기심을 보였던 그녀는, 특히 아버지가 들려주던 기관차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에 깊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학교에서도 과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으며, 재능 있고 총명한 학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869년 6월, 젊은 베르타는 자신보다 다섯 살 연상의 독일 엔지니어 카를 벤츠(Carl Benz)를 만났습니다. 당시 카를은 말 없이 달리는 차량, 즉 무마차를 설계하고 엔진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기술과 공학에 대한 같은 열정을 나누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만 좇는 가난한 남자와의 결혼을 걱정한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르타는 훗날 남편이 될 카를의 아이디어를 굳게 믿었고, 결혼식 전에 이미 자신의 혼수 자금 전액을 카를이 설립한 첫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1872년 7월, 두 사람은 결혼했고 1873년부터 1890년 사이에 다섯 명의 자녀—오이겐(Eugen), 리하르트(Richard), 클라라(Clara), 틸데(Thilde), 엘렌(Ellen)—를 두었습니다.
최초의 “말 없는 마차”
벤츠 부부의 초기 몇 년은 재정적으로 험난했습니다. 카를은 건축 자재 판매업과 병행하여 아내의 자금으로 무마차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883년 막스 로제(Max Rose),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슬링거(Friedrich Wilhelm Eßlinger)와 함께 공동 창립한 회사 벤츠 & Cie(Benz & Cie.)는 산업용 기계와 엔진의 생산·판매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카를에게 벤츠 특허 모토바겐 1호(Benz Patent-Motorwagen Number 1, 통칭 벤츠 1호 삼륜차)를 개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내연기관으로 구동되는 이 삼륜차는 역사상 최초의 자동차 중 하나였습니다.
시속 13~16km에 도달할 수 있는 벤츠 1호 삼륜차는 1886년 대중에게 공개되어 특허를 받았고, 여러 대가 생산된 뒤 빠르게 2호와 3호 모델이 뒤따랐습니다. 시험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카를은 자신의 발명품에 대중의 관심을 끌고 무엇보다 판매로 이어가는 데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홍보와 마케팅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판단한 베르타는, 여전히 남편을 믿는 마음으로 과감한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1888년 8월 5일 새벽, 베르타 벤츠는 카를에게 알리지 않은 채 15살과 13살의 아들 오이겐과 리하르트를 데리고 벤츠 3호 삼륜차에 올라탔습니다. 목적지는 만하임에서 약 106km 떨어진 포르츠하임, 즉 어머니를 방문하는 길이었습니다. 이 여정으로 베르타는 정비사가 입회한 짧고 철저히 통제된 시험 주행이 아닌, 자동차로 장거리를 운전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파격적인 도전이었습니다.
평균 시속 15km로 진행된 이 여정은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여정 내내 베르타는 마주치는 기술적·기계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재주를 발휘해야 했습니다. 차량 운행에 필수적인 석유 에테르(리그로인)는 당시 약국에서만 구할 수 있었기에 약국에 들러 연료를 보급했고, 막힌 연료 라인은 모자핀으로 뚫었으며, 절연이 필요한 전선에는 가터를 활용했습니다. 대장장이의 도움을 받아 체인을 수리하기도 했습니다. 언덕길에서는 차량 출력이 부족하여 오이겐과 리하르트가 차를 밀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르타는 신발장이를 고용해 나무 브레이크에 가죽을 덧대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브레이크 패드였습니다. 해가 진 뒤에야 도착한 그들은 베르타가 전보로 남편에게 성공 소식을 알린 후, 며칠 뒤 여전히 자동차를 몰고 돌아왔습니다.
예상대로 베르타와 아들의 이 여정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자동차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 최초의 장거리 실증 주행을 통해 모델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제동 시스템의 개선과 경사면 통과 성능 향상이 대표적입니다. 베르타의 뛰어난 통찰력은 대중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자동차의 실용성과 더 큰 규모의 주행 시험 필요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베르타 벤츠 메모리얼 루트
그 후 수십 년 동안 자동차는 발전을 거듭하며 일반 대중에게 점차 보급되었습니다. 1914년, 카를은 자신이 공부했던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honoris causa) 칭호를 받았고, 1929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4년, 베르타 벤츠는 카를스루에 대학교 95주년을 맞아 명예 상원의원(Honorable Senator) 칭호를 받았지만, 이틀 뒤인 1944년 5월 생을 마감했습니다.
2008년,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그녀의 발자취를 되짚는 베르타 벤츠 메모리얼 루트(Bertha Benz Memorial Route)가 조성되었습니다. 이 노선은 독일 관광 도로로 지정되었으며, 유럽 산업 유산 경로(European Route of Industrial Heritage)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