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 독일의 핵심 인물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 중 하나였던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의 초상.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헤르만 괴링은 독일의 정치가로, 바이에른 지방 출신이다. 그는 21세에 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보병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으나 이후 항공 부대로 전환했고, 공중전에서 적기 22대를 격추하며 뛰어난 전투 조종사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독일군 최고의 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érite)' 훈장을 수여받았다.
1922년 괴링은 나치당에 입당했다. 1923년 뮌헨 폭동, 이른바 '맥주홀 폭동'에 가담했다가 부상을 입었고, 체포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도피한 뒤 스웨덴으로 옮겨갔다. 약 4년 후 독일로 돌아와 BMW의 대표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전쟁 영웅이라는 명성 덕분에 빠르게 상류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확보하며 본격적인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28년 선거에서 그는 나치당 소속 의원 12명 중 한 명으로 라이히스타크(제국 의회)에 진출하며 정계에 발판을 마련했다.
히틀러 곁으로 오른 권력자
권력에 대한 강한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던 괴링은 빠르게 승진하며 히틀러 곁으로 다가섰다. 1933년에는 프로이센 주 총리가 되었으며, 같은 해 그의 요청에 따라 최초의 강제 수용소들이 설립되었다. 또한 그의 주도로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창설되었고, 1934년에는 게슈타포에 대한 통제권을 힘러에게 넘겨주었다. 1935년부터는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사령관을 맡았으며, 동시에 산업 컨소시엄인 '헤르만 괴링 사업단'의 수장이기도 했다. 1939년 히틀러는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임명했고, 1940년에는 제국 원수(Reichsmarschall)라는 특별한 칭호를 내렸다.
그 외에도 괴링은 돌격대(SA) 지휘관, 제국 삼림 감독관 겸 제국 수렵 관리관, 국가 평의회 의장, 제국 방위평의회 의장, 과학연구위원회 회장 등 수많은 요직을 두루 겸임하며 나치 체제의 실질적인 2인자로 군림했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최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5월 8일, 헤르만 괴링은 미군에게 항복했다.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재판정에 섰는데, 국제군사재판소에 회부된 나치 전범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재판 결과 그는 반인도적 범죄, 평화에 대한 죄, 전쟁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은 끝내 집행되지 않았다. 1946년 10월 15일, 처형을 하루 앞두고 괴링은 몰래 소지하고 있던 시안화칼륨 캡슐을 물어 삼키는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