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에서 만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로렌 바콜(사진: 퍼블릭 도메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자연과 신문, 그리고 첫 출발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일리노이주의 조용한 마을 오크파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무척 사랑해 아가시 자연애호회에 가입했고, 매주 토요일마다 동료들과 숲속 탐방을 다니며 자연에 대한 깊은 감수성을 키웠습니다. 학교 재학 시절에는 언론 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으며, 졸업 직후 「캔자스시티 스타」의 기자로 입사하며 기자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상흔과 파리에서의 만남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헤밍웨이는 적십자사에 지원해 유럽으로 건너갔고, 전선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러나 임무 중 큰 부상을 입어 1919년에야 비로소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에서의 경험은 그의 문학 세계 전반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1921년에는 결혼한 뒤 아내와 함께 파리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거트루드 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당대 예술가들의 서클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토론토 스타」의 해외 특파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작가의 길, 유럽과 세계를 누비다
1924년 기자 일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로 나섰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이혼과 재혼을 거치며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대표작으로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등이 꼽힙니다. 1937년에는 내전으로 불타는 스페인에 종군기자로 파견되어 전쟁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이 경험은 그의 작품에 생생하게 녹아들었습니다.
쿠바의 낙도에서, 영광과 비극 사이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 다시 한번 이혼한 헤밍웨이는 쿠바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훗날 세 번째 아내가 되는 종군기자 마르타 겔혼을 만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두 사람은 함께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을 취재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 쿠바로 돌아온 그는 오롯이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1953년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러나 만년의 헤밍웨이는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놓였고, 1961년 7월 2일 스스로 목숨을 끝내며 파란만장한 삶의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