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101. 사르다르 파텔, 아제르 폭동을 두고 자와할랄 네루와 격론 벌이다!

101. 사르다르 파텔, 아제르 폭동을 두고 자와할랄 네루와 격론 벌이다!

1947년 12월 5일, 인도 아제르(Ajmer)에서 공동체 간 폭동이 발발했습니다. 사태가 악화되자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델리에서 군대가 급히 파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델리 지역 사령관 라젠드라 싱(General Rajendra Singh) 장군은 직접 아제르를 찾아 이틀간 현장을 살폈습니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 총리는 인도·파키스탄 소수민족위원회 회장 N. R. 말카니(N. R. Malkani)에게 전문을 보내 "아제르에서 발생한 폭동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그러나 다행히 다르가(Dargah, 성역)는 완전히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네루는 또한 말카니에게 조만간 직접 아제르를 방문하겠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한편 파키스탄 정부의 난민재정착부 장관 가잔파르 알리 칸(Ghazanfar Ali Khan)은 아제르 상황에 관심을 표명하며 인도 정부 내무장관 사르다르 파텔(Sardar Patel)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1947년 12월 17일 사르다르 파텔은 답신 전보를 통해 아제르의 상황이 통제 하에 있으며, 군 분견대가 다르가를 경비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알렸습니다.

네루가 지적한 두 가지 핵심 우려

자와할랄 네루는 아제르 폭동 소식에 매우 큰 우려를 느꼈습니다. 발크리슈나 카울(Balkrishna Kaul)과 무쿠트 비하리 랄(Mukut Bihari Lal)로부터 아제르의 상황을 전달받은 네루는 아제르 당국과 경찰의 대응 태도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네루는 사르다르 파텔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짚었습니다.

첫째, 이러한 사건이 대규모로 재차 발생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아제르는 무인우딘 치슈티(Moinuddin Chishti)의 다르가 덕분에 인도 전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시라는 점입니다. 만약 다르가에 어떤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소식은 인도 전역과 세계 각국에 빠르게 퍼질 것이고, 이는 인도 정부의 국제적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르다르 파텔의 공식 성명과 피해 규모

네루의 편지를 받은 뒤, 사르다르 파텔은 아제르 사건에 대한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1947년 12월 15일 이후 폭동으로 힌두교도 5명과 무슬림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경찰 발포로 힌두교도 21명과 무슬림 62명이 부상을 입었고, 군 발포로는 힌두교도 8명과 무슬림 7명이 사망, 힌두교도 2명과 무슬림 2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재산 피해 역시 막대했습니다. 피해의 대부분은 스테이션 로드(Station Road)와 임페리얼 로드(Imperial Road)에 위치한 8개의 대형 무슬림 상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 외에도 문구점, 팔찌 가게, 감자상, 석탄상, 서점 등 여러 상점들이 약탈과 방화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총 41개 상점이 약탈당했고 16개 상점이 불에 탔으며, 그중 3개 상점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정부는 재산이 추가로 파괴되는 것을 막고 폭도들을 검거하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행히 다르가는 이번 소요 사태 전반으로부터 온전히 안전하게 지켜졌습니다.

사르다르 파텔은 다르가와 연관된 종교인들에게 성역의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강조하며 호소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정부를 대표하여 조만간 이 역사적인 도시에 평화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표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