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동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영국의 자연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인 헬렌 베아트릭스 포터(Helen Beatrix Potter, 1866~1943)는 동물이 등장하는 아동 도서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세계적인 명작 『피터 래빗』의 창작자입니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동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 7월 28일 런던 켄싱턴에서 영국 부르주아 계급 출신 부부인 헬렌과 루퍼트 포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아트릭스와 여섯 살 아래 남동생 월터 버트럼은 가정교사와 예술과 자연을 깊이 사랑하는 부모의 손에서 집에서 길러졌습니다. 남매는 서로 깊은 우정과 애정을 나눴지만, 가족 밖의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어 상대적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남매는 예술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두 아이의 공부방에는 쥐, 토끼, 고슴도치, 박쥐, 나비, 곤충 등 실로 작은 동물원이라 불릴 만한 반려동물들이 있었고, 이들을 돌보고 관찰하며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베아트릭스는 여름마다 잉글랜드 북부로 떠난 가족 휴가 기간에도 자연을 탐구하며 표본 채집, 화석과 곤충 수집,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1878년부터 1883년까지 베아트릭스는 부모의 지원을 받아 국립미술연수학교(현재의 왕립예술대학교)에서 드로잉 수업을 받으며 미술적 재능을 갈고닦았습니다.

균류학에 대한 열정

호기심이 많았던 베아트릭스 포터는 다양한 과학 분야에 관심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성과 과학성을 모두 갖춘 균류학에 특별한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성에게 진입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자연학자이자 균류학자인 찰스 매킨토시에게 사사하며 독학으로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정밀한 연구를 이어간 끝에 버섯의 번식에 관한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베아트릭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런던 왕립식물원(큐가든)의 식물학자들에게 발표했지만, 여성이자 아마추어라는 이유로 관장은 그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논문 「Agaricinea의 포자 발아에 관하여」를 학회인 런던 린네 협회에 발표하고자 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접 발표할 수 없었고 결국 식물학자 친구가 대신 발표해 주었습니다.

훗날 베아트릭스는 자신의 과학 일러스트레이션들을 앰블사이드의 아밋 박물관 갤러리에 기증했으며, 오늘날에도 균류학자들이 버섯을 감정하는 데 이 자료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동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베아트릭스 포터의 재능은 과학 일러스트레이션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편지와 그림 카드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자주 쥐와 토끼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옛 가정교사였던 애니 카터 무어와는 친구로 지내며 그녀의 아이들에게 자주 편지를 썼습니다. 1893년 애니의 아들 노엘이 병에 들었을 때, 젊은 예술가 베아트릭스는 요양 중인 소년을 위로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 보냈습니다. 그 주인공은 플롭시, 몹시, 코튼테일, 그리고 피터라는 네 마리 토끼였습니다.

1900년, 베아트릭스는 크리스마스에 보냈던 그 이야기를 다듬어 직접 손으로 작은 동화책을 만들었고, 제목을 『피터 래빗 이야기(The Tale of Peter Rabbit)』로 바꿨습니다. 출판사들은 거절했지만, 그녀는 자비로 250부를 초판 인쇄해 서점에 배급했고, 책은 빠르게 팔려 나갔습니다. 이 성공에 주목한 출판사 프레더릭 워른 앤 커머니(Frederick Warne & Co.)는 거절을 번복하고 출판을 승낙했습니다. 이듬해 출간된 『피터 래빗 이야기』는 28,000부가 단 세 달 만에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화려한 작가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피터 래빗 이야기』에 이어 다음 해에는 다람쥐가 주인공인 『다람쥐 넛킨 이야기(The Tale of Squirrel Nutkin)』가 출간되었습니다. 이후 10년간 베아트릭스는 매년 2~3권씩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을 출간했습니다. 말을 하고 사람처럼 옷을 입은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세계는 때때로 잔혹함에서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로 내용을 양잡게 단순화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언제나 가장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시골에서의 삶

1905년, 베아트릭스 포터는 안정된 수입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북서부 컴브리아 주 니어소리에 있는 농장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1913년에는 변호사 윌리엄 힐리스와 결혼했습니다. 집필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새로운 시골 생활에 몸을 맡기며 살아갔습니다. 자연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고, 특히 양 사육에 뛰어들어 지역의 대표적인 목축업자 중 한 명이 될 정도로 헌신했습니다. 베아트릭스와 남편은 행복한 부부 생활을 30년간 이어갔습니다.

환경 문제에 앞서 관심을 기울인 베아트릭스는 호수 지방의 경관과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부동산을 매입해 보호했으며, 사후에는 이 모든 재산을 잉글랜드 문화재 보호 재단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에 기증했습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1943년 12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 남긴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