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만(Carloman)은 프랑크 왕국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의 아들이자, 훗날 프랑크 왕국의 초대 카롤링거 왕이 되는 '소(小) 피핀' 피핀 르 브리프(Pépin le Bref)의 형제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정 관리(Mayor of the Palace)로서 왕국 통치에 깊이 관여한 인물입니다.
아버지 사후의 권력 다툼
741년 샤를 마르텔이 사망하자, 카를만과 피핀은 이복형제인 그리폰(Griffon)과 왕국 지배권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했습니다. 결국 그리폰은 권력 구도에서 축출되었고, 카를만은 오스트라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부 영토를, 피핀은 나머지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반란 진압과 왕권 강화
카를만은 반기를 든 아키텐(Aquitaine)을 정벌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후 독일 방면의 부족들 역시 토벌하며 프랑크 왕국의 지배력을 크게 확장하고 공고히 했습니다.
경건한 신앙과 교회 개혁
독실한 신앙심으로 잘 알려진 카를만은 후에 성인(聖人)으로 시성되는 보니파시우스(Boniface) 주교와 긴밀히 협력하며 프랑크 교회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보니파시우스는 바로 훗날 카를만의 동생 피핀을 프랑크 국왕으로 즉위시켜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계 은퇴와 최후
747년, 카를만은 화려한 권력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동생에게 통치권을 넘긴 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수도사가 되어 기도와 참회 속에서 남은 생을 보냈으며, 75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