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코코 샤넬: 고아원에서 시작된 전설의 패션 제국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 1883~1971)은 세계적인 명품 하우스인 메종 샤넬(Maison Chanel)을 창립한 프랑스의 디자이너입니다.

'코코'라는 이름의 유래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솜르(Saumur)에서 아버지 알베르 샤넬(Albert Chanel)과 어머니 잔 드볼(Jeanne Devolle)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세 딸을 홀로 두고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자매들은 오바진(Aubazine)에 있는 시토 수도회 수도원의 고아원에 맡겨졌고, 가브리엘은 그곳에서 검소하고 엄격한 생활을 6년간 보내야 했습니다. 이후 물랭(Moulins)의 노트르담 학교 수녀들에게 맡겨져 재봉 기술을 익혔습니다. 1903년, 가브리엘은 재봉 공방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훨씬 더 큰 꿈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1907년부터 1908년경 비시(Vichy)에 있는 숙부의 집을 방문하던 시기에 그녀는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무대에 서서 장교들을 앞으로 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장교들이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코코(Coco)'인데, 그녀가 즐겨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별명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큰 사랑을 받으며 많은 구애를 받던 그녀는 부유한 장교 에티엔 발장(Étienne Balsan)과 연인이 되어 상류 사회의 문턱을 넘게 됩니다. 그러나 몇 달 뒤, 그녀는 에티엔의 동료였던 사업가 아서 카펠(Arthur Capel), 애칭 '보이(Boy)'와 함께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떠납니다.

샤넬 패션의 탄생

1909년, 보이 카펠의 권유로 파리에서 독창적인 감각의 모자를 만들어 말레르브 대로(Boulevard Malesherbes)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의류 디자인도 함께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큰 호응을 얻었고, 가브리엘은 곧 자매 한 명과 사촌 한 명을 불러 도움을 받았습니다. 보이 카펠의 자금 지원 덕분에 그녀는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이름의 모자 살롱을 파리에 열었습니다. 이어 1913년에는 도빌(Deauville)에 매장을, 1915년에는 비아리츠(Biarritz)에 세 번째 매장을 열었는데, 이곳이 그녀의 첫 번째 진짜 작업실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치마 길이를 짧게 줄이고 허리선을 없애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으며, 스포츠 드레스를 만들고 세일러 룩을 선보이며 여성적·남성적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단발머리 유행을 주도한 초기 인물 중 하나로서, 그녀는 간결함과 실용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패션에 불어넣었습니다.

성공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코코 샤넬은 직원 300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형 패션 하우스를 차근차근 만들어 나갔고, 보이 카펠에게 받았던 자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19년 연인 보이 카펠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일에 더욱 몰두했습니다. 이후에도 성공은 계속되었으며, 그녀는 특히 파리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파리 상류 사회의 여주인 미자 세르(Misia Sert)와 매우 가까웠던 그녀는 툴루즈 로트렉, 오귀스트 르누아르, 스테판 말라르메, 마르셀 프루스트, 에릭 사티, 콜레트, 피카소, 장 콕토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어울렸습니다. 1921년에는 조향사 에른스트 보(Ernest Beaux)의 도움으로 향수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그중 세계로 수출된 것이 바로 전설의 '샤넬 5번(Chanel N°5)'입니다. 1924년에는 주얼리 작업실을 열었고, 1939년에는 무려 4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시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코코 샤넬은 매장을 폐쇄하고 모든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반유대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적 분위기를 이용해, 대다수 지분이 으베르테르(Wertheimer)라는 유대인 가문에게 있던 샤넬 5번 향수 브랜드의 권리를 되찾으려 했습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그녀는 전 독일 대사관 무관 한스 귄터 폰 딘클라게(Hans Günther von Dincklage)와 함께 지냈으며, 일각에서는 그녀가 나치 독일의 스파이였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그녀는 평생 이를 부인했습니다. 해방 후 그녀는 심문을 받았으나 처칠의 개입으로 즉시 석방되었고, 이후 스위스로 건너가 10년을 머물렀습니다.

1954년, 71세의 나이로 그녀는 으베르테르 가문의 요청으로 프랑스로 돌아와 하우스를 다시 열었습니다. 그녀는 빠르게 성공을 되찾았고, 로미 슈나이더와 잔 모로 같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입혔으며, 그녀의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모방되는 영향력을 누렸습니다.

1971년 1월 10일, 87세의 나이로 코코 샤넬은 파리 리츠 호텔(Ritz) 스위트룸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 자료

코코 샤넬 위키피디아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