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카친(Marcel Cachin, 1869~1958)은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언론인으로, 프랑스 공산당(PCF) 창당의 핵심 인물이자 신문 휴머니테(L'Humanité)의 오랜 편집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년기와 정치 입문
카친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파임폴에서 경찰관 아버지와 농촌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보르도로 옮겨 철학을 공부하며 지식적 기반을 다졌다. 1892년 쥘 게드(Jules Guesde)가 이끄는 프랑스 노동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발을 들였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보르도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 경력을 시작한 그는, 뛰어난 웅변과 대중적 매력 덕분에 큰 인기를 누렸다. 당의 지도자였던 쥘 게드가 병약해지자 그의 뒤를 이어 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었으며, 1905년에는 장 조레스(Jean Jaurès)와 함께 프랑스 사회당(SFIO) 창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방문
1914년 파리에서 하원 의원으로 선출된 카친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성스러운 연합(Union Sacrée)'이라 불린 국민 단결 노선에 동참한 사회주의자 중 한 명이었다. 이는 전쟁 수행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당시 사회주의 진영 내부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었던 선택이었다.
1917년에는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새롭게 수립된 소비에트 러시아에 파견되었다. 이 경험은 그의 정치적 노선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공산당으로의 전환과 말년
1918년, 장 조레스가 창간한 신문 휴머니테의 편집장으로 임명된 카친은 사망할 때까지 약 40년간 이 자리를 지켰다. 1920년 두 번째 러시아 방문을 마친 후, 그는 사회당이 공산당으로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같은 해 열린 투르 당대회에서 카친은 SFIO를 탈당한 공산주의 다수파에 합류했고, 이 과정에서 프랑스 공산당(PCF)이 창당되었다. 이후 그는 생이 다할 때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중추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1935년에는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인민 전선(Popular Front)의 성립에 기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에는 다시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1958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기본 정보
생몰: 1869년 ~ 1958년
국적: 프랑스
직업: 정치가, 언론인
주요 업적: 프랑스 공산당(PCF) 창당 주도, 휴머니테 편집장(1918~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