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클로비스 3세(? – 676), 에브루앙이 옹립한 메로빙거 왕조의 대립 왕

클로비스 3세(? – 676)

클로비스 3세는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 왕으로, 클로테르 3세의 아들로 전해지지만 그 혈통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는 짧았으며, 실질적인 통치 권력 없이 강대한 귀족들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인물입니다.

클로비스 3세(? – 676), 에브루앙이 옹립한 메로빙거 왕조의 대립 왕

힐데리크 2세 암살과 왕위 분쟁

675년, 프랑크 왕 힐데리크 2세가 암살되면서 왕국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때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고뉴의 궁재(宮宰)였던 레제르는 티에리 3세를 왕위에 올렸습니다. 이에 맞서 오스트라시아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궁재 에브루앙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클로비스 3세를 대립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당시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은 '태만왕(Rois fainéants)'이라 불릴 만큼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했고, 실권은 궁재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클로비스 3세 역시 에브루앙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세워진 꼭두각시 왕에 가까웠습니다.

폐위와 역사 속으로의 소멸

에브루앙은 곧 군대를 이끌고 네우스트리아를 침공하여 티에리 3세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적을 제거한 그에게 더 이상 클로비스 3세라는 대안 왕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브루앙은 클로비스 3세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티에리 3세를 다시 앉혔습니다.

폐위된 이후 클로비스 3세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생을 마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짧은 재위 기간 동안에도 스스로의 결정을 내린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는 왕조의 권력 다툼 한복판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진 비운의 인물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