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테르 2세(Clothar II)는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 왕으로, 힐페리크 1세와 그의 아내 프레데군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584년 아버지가 암살되자, 그는 어린 나이에 네우스트리아 왕국을 물려받으며 정치적 삶을 시작했다.
사촌들과의 치열한 권력 다툼
600년경, 클로테르 2세는 오스트라시아와 부르군트를 다스리던 두 사촌인 티에리 2세와 테오도베르트 2세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총명했던 클로테르 2세는 사촌들 사이의 갈등을 교묘히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테오도베르트 2세와 강화를 맺었고, 왕태후 브룬힐다에게 부축길을 받은 티에리 2세가 친형제인 테오도베르트 2세에게 무기를 들게 되자, 클로테르는 중립을 지키며 세력을 보존했다. 결국 테오도베르트 2세는 패배하여 목숨을 잃었고, 이제 클로테르 2세는 티에리 2세와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613년, 분열된 갈리아의 재통일
티에리 2세가 613년에 사망하자, 클로테르 2세는 그의 두 아들을 살해하고, 이미 80세의 고령이었던 브룬힐다마저 처형함으로써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했다. 이에 오스트라시아와 부르군트의 대귀족들이 클로테르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그는 클로비스 1세와 클로테르 1세처럼 통합된 갈리아 전역을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가던 귀족 세력의 저항 때문에, 그는 세 왕국을 하나의 단일 왕국으로 합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는 메로빙거 왕조 후반부 귀족들의 영향력이 커져 갔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평온하고 안정된 말년
재위 후기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왕국은 상대적인 풍요를 누렸고 법률도 안정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통치 능력 덕분에 클로테르 2세는 '현명한 군주'로 기억되며, 두 아들 다고베르트 1세와 카리베르트 2세에게 왕국을 물려준 뒤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