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가브리엘 드 몽고메리(1530~1574): 프랑스 왕을 실수로 죽인 남자의 비균적 일대기

가브리엘 드 몽고메리는 누구인가?

가브리엘 드 로르주(Gabriel de Lorges), 몽고메리 백작(Count of Montgommery)은 노르망디 바스노르망디 지방 출신의 프랑스 귀족으로, 프랑스 국왕 앙리 2세(Henri II) 휘하의 스코틀랜드 왕실근위대(Scottish Guard) 대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평생을 좌우하게 된 결정적 사건, 즉 '부주의한 왕살해(왕살해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가브리엘 드 몽고메리(1530~1574): 프랑스 왕을 실수로 죽인 남자의 비균적 일대기

참혹한 사고: 창에 꿰뚫린 왕의 눈

1559년, 앙리 2세의 딸 엘리자베트 드 발루아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한 기사 토너먼트가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몽고메리는 이 시합에서 국왕과 맞붙어 창을 겨루던 중, 부러진 창 조각이 국왕의 눈을 꿰뚫는 참사를 낳게 됩니다. 이 부상으로 앙리 2세는 며칠 후 끝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임종 직전, 앙리 2세는 몽고메리에게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명시적으로 용서를 내렸습니다. 이는 순전히 불운한 사고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지만, 몽고메리에게 남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로의 피신과 종교 개혁

국왕의 죽음에 연관된 인물이라는 오명은 그를 프랑스에서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몽고메리는 잉글랜드로 피신하여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에 몸을 의탁했고, 그곳에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귀의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고, 종교전쟁(Wars of Religion) 시기 가톨릭 왕권에 맞서 싸우는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주요 군벌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과 최후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Saint-Barthélemy massacre) 때 수천 명의 프로테스탕트들이 학살당했지만, 몽고메리는 간신히 목숨을 구해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그는 노르망디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몽고메리는 1574년 파리 그레브 광장(Place de Grève, 현 시청 앞 광장)에서 참수형에 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한 번의 우발적인 사고가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꾼, 역사가 만들어낸 가장 뼈아픈 아이러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