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1세(Robert I, 865~923)는 앙주 백작 '강한 자' 로베르의 막내아들이자, 888년 서프랑크 왕국의 왕이 된 외드의 동생입니다. 그는 형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파리 백작을 비롯한 여러 백작령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서프랑크 왕국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와의 타협
898년 형 외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로베르는 스스로 왕관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 3세(단순왕)의 정통성을 인정했고, 샤를 3세 역시 로베르가 누리던 작위와 특권을 재확인해 주며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이 시기 로베르는 북부 프랑스에서 노르만족의 침입을 막아내는 방어 임무를 꾸준히 수행하며 귀족들 사이에서 확고한 명망을 쌓아갔습니다.
왕위에 오르다
그러나 샤를 3세와 로베르 사이의 평화는 921년까지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왕국 내 가장 강력한 귀족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로베르는 마침내 샤를 3세에 대한 반격에 나섰고, 922년 랭스에서 프랑크인들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이에 샤를 3세는 군대를 소집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진군했습니다.
수아송 전투와 최후
923년, 두 군주는 마침내 수아송에서 격돌했습니다. 로베르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정작 자신은 전장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그는 샤를 3세와의 일대일 결투 끝에 쓰러졌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뒤를 이어 사위인 라울이 왕위에 올랐으며, 로베르티안 가문의 세력은 이후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가족과 유산
로베르 1세에게는 아들 위그 대공(Hugh the Great)이 있었는데, 그는 당대 프랑스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으로 성장했습니다. 위그 대공의 아들 위그 카페가 987년 왕위에 오르면서 카페 왕조가 개창되었기 때문에, 로베르 1세는 오늘날 카페 왕조의 직계 조상으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