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프레론 스타니슬라스 루이 마리(1754~1802):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 언론인

프레론 스타니슬라스 루이 마리(1754~1802):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 언론인

스타니슬라스 루이 마리 프레론(Stanislas Louis Marie Fréron, 1754~1802)은 프랑스 혁명기의 극진파 언론인이자 정치가입니다. 카미유 데물랭과 친분이 깊었던 그는 극단적으로 격렬한 성향의 신문 인민의 웅변가(L'Orateur du peuple)를 발행하며 혁명 여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혁명의 최전선에서

프레론은 1791년 샹 드 마르 시위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습격 사건에도 가담하며 혁명의 중심에서 활약했습니다.

공포정치기와 프로방스 파견

공포정치기에는 특사 대표(représentant en mission) 자격으로 바라스와 함께 프로방스 지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임무 수행 과정에서 극심한 과잉 행동으로 악명을 떨쳤고, 결국 혁명가 에베르는 그가 바라스와 공모하여 80만 리브르를 횡령했다고 공개적으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테르미도르 반동과 말년

정세가 역풍으로 기우는 것을 감지한 프레론은 탈리앵과 테르미도르파에 합류합니다. 그의 신문 역시 반동 진영으로 방향을 틀었고, 로베스피에르 몰락 이후 등장한 부유층 청년들, 즉 '황금 청년'과 멋쟁이 집단 '무스카댕'의 수장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하게 탕진한 재산 탓에 그의 말년은 초라했습니다. 결국 산토도밍고(오늘날 도미니카 섬)의 부지사직으로 물러난 그는 그곳에서 황열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