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부르봉 콩데의 앙리 1세(1552~1588)

부르봉 콩데의 앙리 1세(1552~1588)

위그노 진영의 지도자

루이 드 부르봉콩데(Louis de Bourbon-Condé)의 아들로 태어난 앙리 1세는 프랑스 종교전쟁기에 위그노(프랑스 개신교) 진영을 이끈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특히 아버지 루이가 죽은 뒤 그의 시신이 끌려 다니며 모욕당하는 굴욕적인 장면을 겪으면서, 앙리는 기즈(Guise) 가문과 앙주 공작(duc d'Anjou)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과 목숨 구하기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이 벌어졌을 때 앙리도 그 현장에 있었다. 살육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그는 개신교 신앙을 버리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면서야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궁정 탈출, 그리고 개신교군의 총사령관

이후 그는 사촌인 나바르의 앙리(훗날 앙리 4세)와 함께 궁정에 거주를 지정당한 채 사실상 감시 아래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궁정을 빠져나와 남부로 도피했고, 이후 제4차·제5차·제6차 종교전쟁에서 개신교군의 총지휘관으로서 진영을 이끌었다.

두 번의 결혼과 비극적인 최후

그의 첫 번째 아내 마리 드 클레브(Marie de Clèves)는 뛰어난 미모로 훗날 앙리 3세가 되는 앙주 공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로 유명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앙주 공작은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아내 샤를로트 드 라 트레무아유(Charlotte de la Trémoille)는 외도 의혹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사정 속에서 그의 암살에 일정한 책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