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 대왕(Hugues le Grand)은 베르망두아의 베아트리스(Béatrice de Vermandois)와 서프랑크国王 로베르 1세(Robert I)의 아들로 태어난 인물로, 10세기 서프랑크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루이 4세 옹립과 '프랑크 공작' 칭호
라울(Raoul) 국왕이 사망하자, 위그는 당시 왕위 계승 분쟁으로 잉글랜드로 추방되어 있던 단순왕 샤를 3세(Charles III le Simple)의 아들 루이 4세(Louis IV d'Outremer, '바다 건너에서 온 루이')를 왕위에 올렸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루이 4세는 그에게 '프랑크인의 공작(Duc des Francs)'이라는 칭호를 하사했습니다.
왕실과의 충돌
그러나 루이 4세가 왕권을 강화하며 귀족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자, 위그는 베르망두아의 에르베르 2세(Herbert II de Vermandois) 및 노르망디 공작 장검 기욤(Guillaume Longue-Épée)과 동맹을 맺었고, 결국 랭스(Reims) 인근에서 루이 4세의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이후 루이 4세는 노르만족에게 포로로 잡혔고, 945년에는 위그에게 넘겨졌습니다.
'왕 만드는 자', 카페 왕조의 토대를 놓다
위그는 이후 로테르(Lothaire) 국왕의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며 사실상 왕국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그는 '왕 만드는 자(kingmaker)'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은 그를 카페 왕조의 진정한 창시자로 평가합니다. 그의 아들이 바로 987년 프랑스 왕위에 오른 카페 왕조의 시조 위그 카페(Hugues Cap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