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 요한 2세(Jean II le Bon, 1319~1364)는 발루아의 필리프 6세의 아들이자, 발루아 직계 왕조의 두 번째 프랑스 국왕이다. 135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는 백년전쟁의 격랑 속에서 재위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
푸아티에 전투, 왕이 된 포로
1355년, 흑태자 에드워드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한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356년, 요한 2세는 푸아티에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고, 포로로 잡혀 런던으로 호송되었다. 프랑스 국왕이 적국의 포로가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 사건은 프랑스 왕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브레티니 조약과 석방
1360년 브레티니 조약이 체결되면서 요한 2세는 300만 리브르에 달하는 막대한 몸값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다만 몸값이 완납되기 전까지 그의 아들들, 그중에서도 앙주 공작 루이가 인질로 잉글랜드에 남겨지게 되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귀환과 최후
그러나 1363년, 인질로 잡혀 있던 루이가 약속을 어기고 탈출해 버렸다. 기사도 명예를 중시하던 요한 2세는 이를 자신의 명예에 대한 심각한 손상으로 여겼고, 1364년 스스로 잉글랜드로 돌아가 다시 포로가 되기를 택했다. 그는 같은 해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명예를 위해 고국을 떠난 그의 선택은 오늘날까지 '선한 왕'이라는 별칭과 함께 회자된다.
정치적 한계와 용기
요한 2세는 경솔하고 사치를 일삼았으며, 올바른 조언을 듣지 않고 정치적 감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그의 치세에는 백년전쟁의 패전과 국내 혼란이 거듭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장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개인적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다.
'프랑' 화폐의 기원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요한 2세가 '기마 프랑(franc à cheval)'이라 불리는 금화를 처음 주조했다는 사실이다. 1360년 석방을 기념해 발행된 이 금화에는 말을 탄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여기서 비롯된 '프랑'이라는 이름은 이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통화 단위로 자리 잡았다.
발루아 왕조 계보
발루아의 필리프 6세 → 선한 요한 2세(재위 1350~1364) → 현명왕 샤를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