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자물쇠 장인 출신 백작, 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1742~1819)

자물쇠 장인 출신 백작, 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1742~1819)

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Jean-Mathieu-Philibert Sérurier)는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시대를 관통한 군인으로,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프랑스 제국 원수로 임명되고 이후 제국 백작에 올랐습니다.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동시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입니다.

7년 전쟁, 프로이센군과의 조우

세뤼리에는 청년 시절 군에 입대하여 7년 전쟁(1756~1763)에 참전했습니다. 그는 독일 전선에서 프로이센군과 여러 차례 교전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고, 이 시절 쌓은 경험은 훗날 뛰어난 지휘관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투옥의 위기, 바라스의 도움으로 석방

프랑스 혁명기의 격변 속에서 세뤼리에는 투옥되는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다행히 폴 바라스(Paul Barras)의 개입 덕분에 석방될 수 있었고, 이후 다시 군복무를 이어가며 재기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탈리아 원정과 만토바 함락

석방 후 세뤼리에는 나폴레옹이 이끈 이탈리아 원정(1796~1797)에 참전해 크게 활약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군이 사수하던 요새 도시 만토바(Mantova)의 함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승전의 공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나폴레옹의 깊은 신뢰를 얻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처녀'라 불린 청렴한 장군

나폴레옹은 어떤 음모에도 가담하지 않는 그의 곧고 정직한 성품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전리품 분배와 서열 다툼이 끊이지 않던 당시 군부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이탈리아의 처녀(La Vierge d'Italie)'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그의 무결점한 인품을 기렸습니다.

백일 천하까지 지킨 충성

1814년 부르봉 왕정이 복원되고,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돌아와 백일 천하를 열었을 때에도 세뤼리에는 변함없이 나폴레옹의 편에 섰습니다. 몰락의 순간까지 주군을 배반하지 않았던 그는 1819년 파리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