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마리 드 라 레벨리에르 르포(La Révellière-Lépeaux, 1753~1824)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 루이 마리 드 라 레벨리에르 르포는 어린 시절 사제 출신 가정교사에게 학대당하며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몸이 굽은 장애를 갖게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깊은 증오가 자리 잡았다.
혁명 정치 입문
그는 삼부회(에스타트 제네랄)에 선출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국민공회에서는 지롱드파 의원으로 활동하며 개인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실각과 복귀
1793년 지롱드파가 실각하자 체포를 피해 은신 생활을 이어갔다.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이후 정치 무대에 복귀했고, 1795년 총재정부가 수립되자 최초로 선출된 총재 중 한 명이 되었다.
총재정부 시기의 활동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왕당파를 타도한 프뤼크티도르 18일 쿠데타(1797년)에 참여했으며, 이후 자코뱅파를 숙청한 플로레알 법령(1798년)에도 관여하며 공화국 방위에 앞장섰다.
그는 가톨릭을 대체할 종교로 이신론에 기반한 '테오피란트로피(Theophilanthropie)' 운동을 적극 지원하며 가톨릭 세력 약화를 꾀했다. 1799년 6월 정부에서 물러났고, 나폴레옹 집권기에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