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아투 최고 명문가문 출신의 귀족
루이 2세 드 라 트레무아유(Louis II de La Trémoille)는 프랑스 푸아투(Poitou)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 중 하나의 후예였다. 그는 약 14세 무렵 루이 11세의 궁정에 시종(page)으로 보내졌고, 이후 프랑스 궁정에서 요직을 거치며 섭정 안 드 부주(Anne de Beaujeu)의 측근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그는 투르(Tours)에서 열린 삼부회(States-General)에 참여했고, 왕실 평의회에도 진출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미친 전쟁'이라 불리던 혼란기에는 생토방뒤코르미에(Saint-Aubin-du-Cormier)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입증했다.
이탈리아 전쟁과 화려한 전공
1494~1495년 샤를 8세(Charles VIII)가 나폴리 원정에 나서면서 이탈리아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라 트레무아유는 이 원정에 동행하여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495년 포르노보(Fornovo) 전투에서 승리했고, 1500년에는 밀라노 정복에 기여했으며, 1509년에는 아냐델로(Agnadello)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1513년 노바라(Novara) 전투에서는 스위스군의 매복에 말려들어 1만 명 규모의 군대와 함께 참패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마지막 전투, 파비아에서의 최후
이후에도 그는 1515년 마리냥(Marignan)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1525년 파비아(Pavia) 전투에서 아르케부스(arquebus, 화승총)에 맞아 64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프랑스 기사 문명의 종언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