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 3세, 누구인가?
루이 3세는 서프랑크 왕 루이 2세 '말더듬이(le Bègue)'와 앙스가르드(Ansgarde)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그는 동생 카를로망(Carloman)과 함께 왕위를 공유하며 서프랑크 왕국을 다스렸다.
아버지의 유산이 분할되는 과정에서 루이 3세는 서부 영토의 일부와 네우스트리아(Neustria) 지방을 물려받았다. 한편 권신 수도원장 위그(Hugh the Abbot)는 루이 3세와 카를로망 2세 형제가 서프랑크의 국왕으로 공식 인정받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병을 운용한 바이킹의 위협
이 시기 노르만인(바이킹)은 종전처럼 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병 부대를 직접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병대를 시골 지역 곳곳에 파견해 약탈을 자행했고, 도시들의 방어선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한 위협이 되었다. 실제로 879년에는 간트(Ghent)를, 880년에는 쿠르트레(Courtrai)까지 침공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소쿠르 전투와 루이 3세의 최후
881년, 루이 3세는 소쿠르(Saucourt) 전투에서 바이킹을 격파하는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같은 해 연말, 노르만족은 아헨(Aix-la-Chapelle)에 위치한 샤를마뉴 대제의 궁전을 초토화시키며 프랑크 왕국의 명멸을 보여주었다.
결국 루이 3세는 불과 3년 남짓의 짧은 통치 끝에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 동생 카를로망 2세가 유일한 왕으로 즉위하며 서프랑크 왕국의 통치권을 홀로 이어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