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루이 12세(1462~1515): '국민의 아버지'라 불린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Louis XII)는 시인이었던 샤를 도를레앙(Charles d'Orléans)과 마리 드 클레브(Marie de Clèves)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어린 시절 루이 11세(Louis XI)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루이 11세는 자신의 딸 잔 드 프랑스(Jeanne de France)와의 혼인을 강요했습니다.

섭정에 맞선 반란과 감금 생활

샤를 8세(Charles VIII)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안 드 보주(Anne de Beaujeu)가 섭정으로서 국정을 주도하게 됩니다. 루이 도를레앙은 이러한 섭정 체제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이 과정에서 벌어진 내분은 역사적으로 '미친 전쟁(Guerre folle)'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반란은 실패로 끝났고, 패배한 루이 도를레앙은 3년간 요새에 유폐되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왕위 등극과 재혼

이후 샤를 8세에 의해 풀려난 루이 도를레앙은 그와 함께 제1차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하며 군사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1498년 샤를 8세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루이 도를레앙은 프랑스의 새로운 국왕으로 선언되어 루이 12세로 즉위합니다.

즉위 후 루이 12세는 잔 드 프랑스와의 결혼을 무효로 선언하고, 전임 국왕의 미망인이던 안 드 브르타뉴(Anne de Bretagne)와 재혼했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 브르타뉴 지역을 프랑스 왕령에 통합하는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탈리아 원정과 좌충우돌

루이 12세는 밀라노 공국을 성공적으로 정복했지만, 이후 프랑스군은 연이은 패배를 겪으면서 이탈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고 다시 전쟁을 개시하여 라벤나(Ravenna)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점령했던 영토들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1515년 루이 12세가 서거하자 그의 사촌인 프랑수아 1세(François I)가 왕위를 계승하며 프랑스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