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루이 10세 르 위탱(1289~1316): 네슬 탑 스캔들과 왕위 계승 위기

루이 10세 르 위탱(1289~1316): 네슬 탑 스캔들과 왕위 계승 위기

루이 10세 르 위탱, '말다툼하는 왕'

루이 10세 르 위탱(Louis X le Hutin, '말다툼하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르 벨(Philippe IV le Bel)과 나바라 여왕 후아나 1세(Jeanne Ièr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1305년 어머니의 사망으로 나바라 왕위를 물려받았으며, 1314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여 1316년까지 재위했다.

첫 번째 결혼과 네슬 탑 사건

1305년 루이 10세는 부르고뉴의 마르그리트(Marguerite de Bourgogne)와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비극으로 끝났다. 마르그리트는 시누이들과 함께 간통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것이 프랑스 왕실을 뒤흔든 유명한 '네슬 탑 사건(Tour de Nesle)'이다.

유죄가 확정된 마르그리트는 샤토가야르 성(Château-Gaillard)에 감금형을 선고받았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인 국왕 루이 10세의 지시로 그곳에서 질식사하거나 교살당했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결혼과 사후 태어난 아들 장 1세

마르그리트의 죽음 이후 루이 10세는 헝가리의 클레멘스(Clémence de Hongrie)와 재혼했다. 그러나 1316년 6월 루이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 직후 미망인이 된 클레멘스는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가 바로 '사후 태어난 자'라는 뜻의 장 1세(Jean Ier le Posthume)이다.

왕위 계승 문제와 필리프 5세의 즉위

장 1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사망하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짧은 통치 기록을 남겼고, 곧바로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다. 루이 10세에게는 첫 결혼에서 얻은 딸 잔이 있었지만, 여성의 왕위 상속을 배제하는 관례에 따라 결국 루이의 동생 필리프 5세가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이 계승 원칙은 훗날 백년전쟁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필리프 4세 르 벨의 아들 – 프랑스 국왕(재위 1314~1316), 장 1세(사후 태어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