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을 이끈 건국 군주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을 이끈 건국 군주

미하우 고들레프스키(Michał Godlewski)가 그린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워의 초상화.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워(Władysław II Jagiełło)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워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공이자 폴란드의 국왕으로, 유럽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왕조 중 하나인 야기에워 왕조(Jagiellonian dynasty)의 시조입니다. 그는 게디미나스 왕조(Giedyminowicz) 출신의 공작 올게르트(Olgierd)의 아들이었습니다.

출생과 즉위

그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는 1352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의 주류 학설은 그가 실제로는 한 세대 더 젊어 1362년경에 태어났다고 봅니다. 이에 따르면 그는 겨우 열다섯 살 남짓의 소년으로 리투아니아 대공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폴란드와의 결혼 동맹

1386년, 야기에워는 십대의 나이였던 폴란드 여왕 야드비가 안제군스카(Jadwiga Andegaweńska)와 결혼했습니다. 폴란드 귀족들과 맺은 협약에 따라 그는 세례를 받고, 리투아니아의 정식 기독교화를 시작하며, 리투아니아 국가를 폴란드와 통합하는 데 동의했고, 그 대가로 왕관을 받았습니다. 당시 체결된 이 합병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양국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왕가의 후계 문제

야기에워는 세례명 '브와디스와프'를 받고 1386년 3월 4일 폴란드 왕위에 올랐습니다. 1399년 야드비가 여왕이 사망한 후, 그는 차례로 안나 첼레이스카(Anna Cylejska), 엘주비에타 그라노프스카(Elżbieta Granowska), 조피아 홀샨스카(Zofia Holszańska) 등 세 번 더 결혼하며 아들의 탄생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드디어 첫 아들 브와디스와프가 태어난 것은 야기에워가 예순을 넘긴 무렵이었는데, 이 때문에 조피아 왕비의 충실함과 아이의 진짜 혈统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룬발트 전투와 최후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는 튜턴 기사단과의 승리 전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결정적인 그룬발트 전투(Battle of Grunwald)에서 '무적의 기사단'이라는 신화를 산산조각 내며 중세 동유럽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야기에워는 밤ingale의 노래를 들으며 감기에 걸린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